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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Nov 22. 2022

성장과 이별의 이야기

웹툰 <내게 게임은 살인이다>를 읽고


예전에 우왕이 작가가 연재했던 <아즈얼라는 저주받았습니다(이하 아얼죽)>라는 웹툰을 몹시 좋아했다. 나는 WOW(World of Warcarft)를 제대로 플레이해본 적도 없었지만, 웹툰 속 인물들이 게임 속 세계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들이 좋았다. 각자 게임을 시작한 이유도 제각각에, 현실과 게임은 분명 다른 공간이지만 어느덧 그 두 세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게임도 현실만큼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이 MMORPG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사실 톡 까놓고 이야기 하면 망한 서버에서 뉴비가 개고생하는 웹툰 정도의 감상이었으나, 나중에는 인물들의 드라마가 강조되서 더 좋았다. 주인공 전사짱짱맨이 알고 보니 천재적인 실력의 보유자였다거나, 드레링과의 관계라거나 등등... 여하튼 아얼저는 17년 즈음에 완결이 났다. 작가 분이 군대크리를 맞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야기에 결말을 내야한다는 결심도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의 인물들을 더 만날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쉽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우왕이 작가가 레진코믹스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정말 우연한 계기였는데 아마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알게 되었지 싶다. 제목은 <내게 게임은 살인이다>로, 우왕이 작가가 스토리만 담당한 모양이었다. 모처럼 내 취향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1부가 끝난 게 아쉽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괴로움을 겪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약없이 다음 연재를 기다려야하는 고통을 나만 겪을 순 없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왜 하필 우측 짤방으로 유명해진 축구만회의 대사를 제목으로 했는지는 고민을 좀 해봐야겠으나....


<내게 게임은 살인이다(이하 내겜살)>은 가상현실 게임 '케이지'를 시작하게 된 소년 '시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련'은 단순한 흥미로 게임을 시작했지만, PK(플레이어 킬)을 일삼고 있는 악성 유저 '가이샤'와 엮이면서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이하 스포일러 다수, 웹툰을 보실 분들이라면 읽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외형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게임물 같지만 성장물의 전개가 완전히 내 취향이었다. 흥미 본위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 캐릭터 '시련'이 게임을 시작했던 이유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이는 '가이샤'도 마찬가지로, 퇴역군인인 그녀는 한쪽팔과 다리를 잃은 상황에서 가상현실인 '케이지' 속에서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괴로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게임 속에서마저 다른 유저들의 악의에 시달리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죽이려했던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된 것도 생각하면 할수록 참 묘한 감정에 잠기게 한다.



그 이유인즉 오로지 시련과 가이샤 이 둘만이 이 게임에 '진심'이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내게 게임은 살인이다'는 꽤 적절한 제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케이지'에서는 유저가 현실과 동등한 수준의 고통을 겪으므로, 죽음조차 단순한 게임 속의 일이라고 웃어넘길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이것을 그저 '게임'이라 여길 테지만, '가이샤'나 '시련'에게는 게임이 곧 현실을 대체할만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공간이리라. 그 두 사람에게만큼은 게임은 '살인'이라는 행위에 비견될만큼 현실에 가장 맞닿아있는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가이샤에게 있어서는 모르겠지만 특히나 시련이 1부 후반부에 '고작해야' npc인 요를의 죽음에 진심으로 분노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나도 눈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캐릭터를 이렇게 과감히 죽여버린 작가의 결정에는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론 그랬어야만 했나 되묻고 싶어지기도 했다. 작가 본인이 <아얼저>에서 캐릭터의 입을 빌려서 했던 말을 지킨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작가도 요를에게 애정을 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왜 이렇게나 <내겜살>에서, 특히나 고작해야 npc인 '요를'과의 이야기에 이렇게나 마음이 울렸나를 가만히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겜살>의 다른 점도 좋았지만 아마 이 웹툰의 다음 이야기를 반드시 기다려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요를'과의 에피소드 때문이었는데, 작가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이런 이야기라면 이 다음은 얼마나 더 재미있을지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단순히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한다는 방식 이상으로,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에 대한 작가의 통찰 같은 것이 엿보인 대목이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여러 단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울림은 각별하다. 이별을 떠올리면 괜히 가슴 한편이 무겁게 가라앉는데, 그 고통은 둔중한 동시에 예리하다. 이별이 남긴 상처의 깊이는 너무 깊어서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데 예리하기까지해서 고통의 정도가 여느 경험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이별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누구에게나 이별은 찾아오고야 만다. 시간에 의해서든, 서로의 잘못에 의해서든. 특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순간은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일 것이다. 심지어 이별이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후회를 떨처낼 수 없을 때 그 사람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도저히 같을 수 없다.


철저히 무너져버리거나 성장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인간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탯를 올리고 스킬 레벨을 올려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성장은 그런 식으로 상승지향적이거나 단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상처와 고통을 동반한다. 성장은 매순간 과거의 나와 이별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별은 '죽음'이라는 말로 다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또 다시 '게임'은 살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우왕이 작가가 요를과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성장과 이별을 다루어주어서 참 좋았다. 물론 괴롭기도 했지만. 그리고 고작해야 스쳐지나갈 뿐인 엑스트라와의 이야기를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서 다루어준 점도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요를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꼭두각시 서커스>의 중반부 에피소드인 바이 인과 프란시느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여하튼, 나의 취향은 참 일관된 형태를 띄고 있는 듯 하다.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이별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루를 살아가고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들. 이 발버둥을 담아낸 이야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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