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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25. 2022

한국형 히어로의 귀환

[영화 감상] 범죄도시2(2022) 리뷰

범죄도시 개봉, 그로부터 5년.

영화 <범죄도시>가 개봉한 지도 5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영화의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배우 윤계상의 연기는 물론 숱한 명대사를 남긴 범죄자 '장첸'과 마동석이라는 인물 그 자체인 형사 '마석도'와 같은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물론이고, 스크린 너머 관객마저 압도하는 폭발적인 액션과 맛깔나는 대사들까지. 앞선 설명으로도 채 설명되지 않을 만큼, <범죄도시>가 매력적인 영화였다는 방증일 것이다.


<범죄도시>의 흥행 이후 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으나, 이후에 마동석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비슷비슷한 내용에 어딘가 아쉬운 만듦새를 보이면서, 기대감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막상 속편이 나온다면 찾아볼 계획이었다. 길고 긴 코로나로 인해 발길을 끊었던 영화관을 찾아갈 구실이 필요하기도 했거니와. 아무렴 <범죄도시>의 속편인데 궁금증도 컸다.


마침내 2022년 5월, <범죄도시2>가 공개됐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재미는 충분했다! 하지만?

<범죄도시2>는 분명 재미있는 영화였다. 전작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액션과, 영화 사이사이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유머 요소, 특히나 전작을 봤던 관객이라면 웃을 수밖에 없는 무장하고 있었다. 액션의 경우, 음향 연출이 달라졌는지 마동석 배우의 한 방 한 방이 유독 묵직하게 느껴졌다. 15세 이용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다소 잔인한 부분도 있었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나진 않아서 크게 불편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납치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자주 활용되었는데, 긴장감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극의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요소로 적절히 활용되었다. 자수한 범죄자를 취조하는 장면도 재미있게 그려지지만, 이후 마석도와 전일만 반장이 강해상의 흔적을 찾아 도박장을 한바탕 들쑤셔놓는 장면은, 굉장히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유쾌하게 해결된다. 이러한 전개는 해당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뒤이을 사건의 무게감을 한층 더 묵직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전작을 활용한 부분들도 눈에 띄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몇 가지 꼽아보라면, 영화 초반부 범죄 현장에 호출된 마석도가 소개팅 중에 불려 나온 것에 한 마디 하는 장면이나, 죽은 줄 알았던 장이수가 등장해서 사타구니를 붙잡히고, 배달음식을 뺏기는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전작을 본 관객들이라면 피식하거나 크게 웃음이 터졌을 법한 장면이었겠지만, 전작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소 의아했을 수도 있겠다.



원작에 대한 오마주로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장이수가 영화 막바지에 전작의 명대사를 따라한 장면일 것이다. 전작을 안다면 여기서 웃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범죄 조직의 보스에서 이런 불쌍한 처지로까지 떨어졌나 싶어 측은함까지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인물 묘사가 있었기에 그와 대비되는 강대상이라는 캐릭터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를 살려낸 배우 손석구의 연기도 압권이다.


재미있는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요소들을 꼽아보라면 이뿐이 아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딘가 전작에 비해서 아쉽지 않았는지 은연중에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야기 전개 방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유사한 플롯, 그러나 분명한 차이.

어떤 면에서는 전작에 비해 아쉬운 면이 있었다. 플롯의 유사성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플롯을 채우고 있는 사건들 간의 연결성과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두 영화의 차이를 만들어낸 이유로 보인다.


흉악한 범죄자와 그 뒤를 쫓는 형사라는 구도를 기본으로 두고, 두 인물이 만날 듯 만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과정은 두 작품 모두 유사하다. 다만 <범죄도시>는 공통된 활동 반경을 공유하면서 영화 속 배경 내에 사건들이 긴밀하게 이어지는 데 반해, <범죄도시2>는 사건과 사건이 명백히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단절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기업 회장의 아들을 납치하는 초반의 사건과, 동업자들을 무참하게 처리하는 사건, 그보다 훨씬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닌 과거 회상으로 처리되면서 유기적이지 않게 그려진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그리고 공간이 국내에서 해외로, 또다시 해외로 바뀌는 과정에서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갑작스레 퇴장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장첸 VS 강해상

전작의 장첸에 비해서 강해상의 매력이 떨어진 듯 보이는 이유도 배우의 연기나 캐릭터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 변하면서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인물 모두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혹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장첸은 두 명의 부하는 물론, 독사파와 이수파 등 다른 인물들과 부딪히는 사건들이 모두 현재 시점에서 그려진다. 인물의 과거를 모르더라도 현재를 통해 충분히 짐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강해상은 이미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잔혹함만이 강조된다. 주변 인물들은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협력할 뿐이어서 강해상이라는 인물은 아무리 사건이 거듭되더라도 여전히 베일에 쌓인 채로 남아있다.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도,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이 장첸이었다면 강해상은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잔혹함만이 강조되다보니, 매력도 반감된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의 쾌감 자체로는 <범죄도시2>가 더 강렬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눈앞에서 펀치머신을 때리는 장면을 본 것과 같은 수준이지, 나쁜놈을 마침내 때려잡았다는 서사적 만족감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법보다 가까운, 정의의 주먹

<범죄도시2>는 범죄, 액션 영화인 만큼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 전면에 '정의가 바로 서있지 않다'는 정서가 깔려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강해상은 잡히지 않는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마석도가 강해상을 잡으려고 하니, 베트남 법 때문에 경찰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만 한다. 여기서 포기하면 영화는 끝나기도 하지만, 마석도는 쉽게 포기할 인물이 아니다.



마석도는 "나쁜 놈 잡는데 이유가 어딨냐"며 베트남의 공권력을 아랑곳 않고 강해상을 찾아다닌다. 상대방이 마체테를 쓰든 권총을 쓰든 주먹 하나로 해결하는 마석도를 보며 관객들은 희열을 느낀다. 이 감정은 '압도적인 무력'에서 오는 쾌감만은 아닐 것이다. 소위 '정의구현'에서 오는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대체 '정의'란 무엇일까. 영화 <범죄도시2>에서의 정의는 '복수'에 가깝다. 복수, 내가 당한 만큼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 딱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죽였다면 응분의 댓가를 치루는 게 당연해 보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영화 속 대기업 회장 역시 아들을 죽인 강해상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들을 보내질 않는가.


그럼 대기업 회장과 마석도는 무엇이 다를까? 사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았으니 마석도의 '정의'는 괜찮은 것일까? 여전히 마석도의 '정의' 역시 사적 제재와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몹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형사라는 공권력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범죄자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정의가 바로잡혔다'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범죄도시>로부터 무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가 '마석도'라는 인물에게 환호한다면 그 이유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법과 정의가 무력한 순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의가 과연 옳을지, 우리가 무력한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지는 이제라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형 히어로의 귀환

제목에 '2'를 달고 나온 영화들치고 전작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2편이 나왔다는 건 그만큼 전작의 완성도와 재미가 탁월했다는 것일 텐데, 전작의 퀄리티에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마저 넘어서기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래도 <범죄도시2>라면 충분히 훌륭한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 평론가가 전작 <범죄도시>를 두고 '슈퍼히어로물'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러한 평이 연상될 만큼 <범죄도시2>는 범죄와 액션 장르라는 탈을 쓴 히어로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범죄 액션이라는 영역과 조금 다른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범죄자들이 얼마나 신명나게 두들겨 맞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보셔도 좋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아래 흰색 배경의 포스터는 미묘하게 스타워즈 느낌이 나서 볼 때마다 기시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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