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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01.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31

20. 추억


3월이 벌써 끝났습니다. 그 말인 즉 2019년 1분기가 끝났다는 소리이기도 한데, 시간이 흐르는 거야 세상 돌아가는 순리지만, 막상 3월을 떠나보내야 하니 괜히 아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뒤돌아보면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그렇다고 정말 한 일이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뭘 했었는지 또 떠오르지 않습니다. 정리를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월은 졸업하고 백수 신분으로 맞이하는 첫 해였으니 놀았고, 2월은 설 연휴 때문에 놀았고, 3월은 졸업하고 아직 3달 째니 계속 놀았고 이래저래 실컷 놀기만 했군요.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흘려보낸 시간조차 추억이 되고 그리울 거라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복잡해집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추억이 떠오르는 특정한 장소나 날짜, 사물 따위가 있으실 겁니다. 가령 저는 어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노래를 즐겨 듣고는 했던 과거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인 <Estranged>를 들을 때마다 대학교 1~2학년 때가 떠올라 괜히 센티해집니다. 대학교에 입학해 이래저래 방황하던 시절, 이 노래를 동아리 방에서 자주 들었으니까요. 빈지노의 노래 <Always awake>나 <If i die Tomorrow>도 그렇군요. 밤새 깨어있으면서 노랫말을 흥얼거리곤 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워낙 좋은 노래들이라서 자주 듣기도 했고 단순히 자주 들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 그 노래의 가사들이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왔으니까요.


음식은 딱히 없는 듯도 합니다. 다만 고모님이 어렸을 때 해주셨던 반찬 중에서 얼음을 동동 띄운 오이냉국이라든지, 너무 오래 구워서 바삭해지다 못해 쿠키 같이 딱딱한 식감을 자랑했던 삼겹살 같은 것은 아직도 떠오르곤 합니다. 구체적인 사물이나 대상과 상광벗이 불현듯 떠올라서 가슴 깊숙한 곳을 시큰하게 만들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사라지는 기억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연락도 자주 하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어 더 이상 만날 일도 없고, 굳이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나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지지요.


저는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런 상념에 잠기는 것도 어쩌다 한 번에 불과하지만, 그 어쩌다 한 번이 딱히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것들은 딱히 없고, 뭔가 회한에 가까운 느낌만 남아서 그런 듯합니다. 돌이킬 수 없기에 그때 잘했어야 했는데 같은 후회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걸까 같은 생각은 해봅니다. 남아있는 인생은 길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저만 불행해질 뿐이니까요.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단편적인 추억들이 떠오르는데, 어찌 된 게 기분 좋은 내용인 것이 별로 없군요. 황급히 그 이미지들을 지워내고 서둘러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추억이 있으실 겁니다. 하필 3월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기억도 있으실 거구요. 저에겐 이제 새 학기와 대학교가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아직은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나중에는 대학교에 다니던 순간을 정말로 그리워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모두 기억할 순 없겠지만, 앞으로는 그 순간의 이미지를 남겨보려 노력해볼까 합니다. 지난 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꾸만 잊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이제와 돌아볼 추억이 없는 것도 조금 슬픈 일이더라구요. 오늘 하루를 먼 훗날에 돌이켜봤을 때, 행복했던 순간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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