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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09.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5.9

37. 고독


스무 살부터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딱히 불편한 건 없었죠. 어렸을 때부터 여럿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으니까요. 더욱이 자기만의 방을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걸 이루었으니 더 바랄 게 없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지만 여전히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번씩, 세상에 나 혼자 던져진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고, 잡동사니처럼 내팽개쳐진 느낌. 고독이 내게로 왔음을 그 순간 느낍니다.


고독은 늘 그렇게 까닭도 없이 찾아옵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서른이 가까워진 지금도 당최 그러질 못한단 말이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말입니다. 그렇다고 고독을 실감할 때마다 집을 박차고 나서 길거리를 쏘다니거나,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누군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고독은 고개를 치켜듭니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데 그들로부터 갑자기 낯섦을 느끼고,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듯한 느낌을 받을 때. 그 지독한 거리감은 상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누굴 만나도 소용없겠다 싶어 혼자 있기를 결정해도 사정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하루 이틀, 그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 언뜻 고독이 무뎌지는 듯하다가도 결국엔 더더욱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애타게 연애를 갈구하는 이유도 그러한 고독의 순간을 혼자 견디기는 어려워서가 아닐지 어림짐작 해봅니다. 물론 연애를 하고 있는 모두가 그런 이유로 시작한 건 아닐 겁니다. 설령 그런 이유로 연애를 한다고 반드시 불행하라는 법도 없고요.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만의 고독이 있을 따름입니다. 온전한 자신만의 몫. 그 고독을 어찌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고독이 있기에 어떤 이미지로도 마땅하게 설명되진 않습니다. 그나마 그러한 느낌에 가까울 이미지를 올려봅니다.


직장을 가지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에 치이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질 겨를도 없겠죠. 그런 이유로 백수생활을 청산하자니 또 너무 성급한가 싶어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능력도 충분하지 않은데 직장을 가진들 버틸 수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취미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 혹은 영화를 아무리 열심히 찾아본들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에 상관없이 결국엔 그 자체에 질리게 됩니다. 게임이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나를 마주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불현 듯 세계 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 자신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고독의 순간은 결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아니,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감각이기에 사랑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독을 부정적이라고 판단해서 이기려들거나 기나긴 분투 끝에 지게 되고 절망에 삼켜지지 않아야 할 겁니다. 차라리 어떻게 해야 그 순간마저도 오롯이 나로서 있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고독은 우리가 스스로와 마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기도 하니,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도 나쁘진 않겠죠. 오늘도 어김 없이 찾아올 고독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다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고, 또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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