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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27. 2019

무엇이든 쓰기로 했다면
(글쓰기에 대해서 (2))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5월 26일, 마흔여섯 번째 글


한참 동안 쓰고 있던 글을 영 아닌 것 같다 싶어 치워두고, 백지가 된 화면을 마주하니 허탈한 기분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데 대체 뭘 써야 하나 싶고 막막함이 앞서지만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표현들을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루 한 편]을 쓰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몇 번은 있었지요. 그래도 머리를 쥐어짜내다보면 뭐라도 소재가 떠올라서 그에 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두서 없이 풀어내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지만, 오늘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끔찍한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소재 고갈로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


평소라고 글이 쉽게 쓰였던 건 아니긴 합니다. 일상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에서부터 느낀 점을 보다 면밀히 구체화하거나 그간 있었던 고민의 지점을 특정한 대상과 이어보며 정리하는 식이었지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리 짧아도 30분, 길면 1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온전히 글에 집중하지 못하면 2시간도 넘게 걸리니, 생산성이 좋다고는 못하겠네요. 게다가 남에게 보일만한 글이 되려면 독자층을 분명히 하고, 취향과 형식을 따져야 할텐데 그저 '여기 뭔가 써놓긴 했음'으로 급급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납득하지 못한 글을 대체 누구에게 읽히려는 걸까 싶어 허탈한 기분이 들지요.


지난 번 '하루 한 편'에서 글쓰기에서는 일단 쓰고 보자고 거창하게 이야기 했지만 단순히 무엇이든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보입니다. 브런치 같이 남들에게 글을 내보이는 곳이라면 더더욱 목적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나마 브런치는 일상에 대한 가벼운 글이 허용되는 분위기여서 망정이지 '일기장은 일기에.'라는 반응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정보를 전달하든지 남들은 떠올리지 못했던 깨달음을 주든지 읽기에 재미가 있든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글이 나에게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사사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글은 계속해서 쓰긴 해야겠죠. 다만 무작정 쓰다가는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됩니다. 왜 글을 쓰느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목적 없이는 말이죠. 저에게는 글은 일종의 취미입니다. 사람들에게 건전한 종류의 관심을 받기를 좋아하고, 어떤 종류의 생각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평소에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묵혀둔 발상을 표현하길 원하지요. 그렇다면 단순히 생각을 늘어놓는 것과는 분명 달라야 합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고,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해야할 내용은 없는지 다방면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겠죠. 번거롭더라도 그래야만 비로소 읽을만한 글이 되는 듯 합니다.


결국 품을 들이는 만큼 글도 나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면, 한평생을 바쳐도 끝내지 못할 테니 어느 순간에는 글을 세상에 놓아주는 용기도 필요하겠구요. 비록 지금은 부족해도 계속해서 쓰다보면 조금씩은 나아질 거라는 다소 안일한(?)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노력의 끈을 붙잡습니다. 그 발버둥을 구태여 누군가에게 보일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니가요. 다음에 글을 쓸 때는 정말 이거다! 이걸 말하고 싶었다! 하는 이야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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