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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02. 2019

한국의 풍경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1일, 마흔아홉 번째 글


저는 걷는 걸 좋아합니다. 오래 걷다 보면 허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때도 있지만 그 통증마저도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며 하염없이 걸을 때도 있을 정도지요. 예전에는 걷는 와중에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지만, 재작년 즈음부터 일부러라도 이어폰을 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냅다 이어폰을 귀에다 꽂고 핸드폰만 들여다볼 때가 더러 있지만, 가급적 주변의 풍경을 좀 더 눈에 담아두고자 했습니다. 내가 딛고 서있는 이 곳, 서울의 어딘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사람들.


그렇게 주변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전혀 거기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물을 발견한다거나, 의외의 장소 같이 신기한 것들이 있었구나 하고 말이죠. 마흔한 번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런 순간은 익숙한 풍경을 마주했을 때도 찾아옵니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 대학교 근처에서만 5년 가까이 살았는데, 어떨 때는 여기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동네가 맞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허름한 점포가 있던 곳에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다거나, 꽤 오래 영업을 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던 골목의 식당, 혹은 엉뚱한 입간판이나 낙서를 보게 되었을 때, 그 새로움이란!


그런 풍경 중에서도 오피스텔은 그 새로움이 덜하긴 합니다. 철거를 했다 하면 그 자리에 들어서는 건물이 오피스텔 혹은 원룸텔이니, 암만 새로운 건물이라 해도 그놈이 그놈 같고 오피스텔만 빽빽이 들어선 도시의 풍경을 상상하니 어찌나 재미없는지. 어쩌면 외국에서 온 여행객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풍경을 떠올릴 때, 오피스텔이 빼곡한 풍경을 먼저 상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오늘 위례 신도시 쪽에 갈 일이 있어 그곳을 거니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드는 겁니다. 대체 한국적인, 한국의 풍경이라는 게 뭐라고 나는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을 나쁘게 여기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만 했던 게, 위례 신도시의 풍경이 참 인상적이었거든요. 제각기 다른 브랜드의 아파트 단지 사이로 길고 널찍하게 펼쳐진 상가. 세련된 느낌에 더해 목적성이나 기능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모종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도시 계획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싶고, 막연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국스러운' 풍경이라는 개념이 분명한 형태로 다가오더군요. 어쩌면 미래의 교과서에서 21세기 한국을 소개할 때 도시의 모습을 소개하는 사진 중 하나로 이 곳의 풍경이 실릴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합니다만 왠지 가능할 것 같지 않나요?


구태여 경복궁이나 불교의 사찰을 동양적인 혹은 한국의 이미지라 생각했던 건 아닌지. 막연하게 유럽이나 미국 같이 서구권 국가의 도시와 비교해가며, 있지도 않은 '한국다움'을 보려고 억지를 피운 게 아니었는지 반성해봅니다. '한국의'라는 개념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어떤 표준을 구태여 설정하고자 한다면 다분히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저 단 하나 분명한 건 지금 이 곳이 바로 한국이고, 주변의 모습도 역시나 곧 한국이라는 거겠죠. 저는 이 한국의 모습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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