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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05. 2019

체념을 넘어서서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5일, 50번째 글


6월 3일에 올린 영화 <기생충>에 대한 리뷰가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조회수와 호응을 얻었습니다. 의외의 결과에 얼떨떨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영화 리뷰는 아무래도 최신작 쪽이 관심을 끌기 좋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고, 좋은 글을 쓰는 것과 조회수나 반응은 큰 상관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하루에 짧은 글 한 편]의 제목을 <체념을 넘어서서>로 결정한 이유도, 그러한 깨달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를 쓰는 내내, 그리고 쓰고 나서도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내가 과연 영화를 통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쓰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남들의 리뷰와 비교되지 않으려고 애써 말을 지어내고 있진 않나. 혹은 구태여 리뷰를 쓰고 싶지 않은데 꾸역꾸역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런 의문이 강해졌습니다.


영화 리뷰를 쓰는 동안 한 번도 이 정도 반응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여러모로 얼떨떨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적 자체가 몇 번 없었습니다. 아니, 있기는 했을까요? 아, 영화 <뺑반>에 대한 리뷰는 꽤 만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써야겠다는 욕심 없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으니까요. 글의 완성도는 그리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완성도라는 게 애매한 기준이긴 하죠. 대체 어떻게 써야 완성도가 있는 글일까요. 적어도 제 안의 완성도에 대한 정의는 다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한 편의 글로서 구성되어있고, 메시지가 분명하면서 쓴 사람의 고유한 관점이 느껴지는가. 구성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좋죠. 다만 이것만은 꼭 전달하고 싶었다! 같은 의지가 느껴지느냐, 네, 그런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기준에 따라 제가 쓴 리뷰를 스스로 평가해본다면, 수준 미달입니다. 제 자신이 만족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종종 리뷰를 쓸 때마다 시달리는 욕망. 나도 그거 알고 있다. 몰라서 안 쓰는 게 아니다. 쓰다 보니 까먹어서 놓친 것뿐이다. 같은 지적 허영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희미해지고, 글의 분량은 의미 없이 늘어납니다. 구성도 늘어지죠. 이번 리뷰에서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100% 담아내지 못했고, 소품이나 소재 이야기만 하다가 힘에 부쳐 포기해버린 느낌이 큽니다. 그러던 차, 제가 쓰고 싶었던 리뷰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리뷰를 몇몇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영화 <기생충>을 보자고 권해주신 선배가 읽어보라 권해주신 글이고, 다른 하나는 웹서핑 중 우연히 찾게 된 글입니다. 이 글의 가장 하단에 링크를 첨부하겠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이 두 가지 글을 보고 더 좋은 리뷰를 쓰지 못한 게 분하기도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어제 하루종일 마음 한 편이 뒤숭숭했습니다.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들 앞에 글을 보일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걸 떠올리고 겨우겨우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가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글이 어디 있을까요. 있을 순 있지요. 그러나 글을 쓰는 매 순간마다 만족스러울 순 없을 겁니다. 썩 만족스럽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글을 세상밖에 내보여야 하는 순간이 있죠. 그러나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내보여야 후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과제를 제출하던 때의 못된 버릇처럼 그저 한시라도 빨리 편해지고 싶어서 조급하게 일필휘지로 끝낸 다음에 이게 최선이었다며 자기 최면 후에 글을 발행하곤 한시바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으니 후회도 클 수밖에요.


그럼에도 써야지 어쩌겠습니까. 불만족스러운 순간도 많고, 글 자체가 꼴도 보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순간도 있죠. 여기서는 글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하고 있던 일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대단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런 적이 없었다면 다행이지만, 저는 종종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울적한 기분에 잠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렇지만 더는 그렇게 무너져 있는 채로 남아있고 싶지 않습니다. 혹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체념하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얄팍하거나. 사소한 것도. 하찮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일기에나 쓰면 될 자기 고백을, 구태여 글의 형태로 남에게 내보이는 것은 혹시나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께 힘내자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인 리뷰입니다. 사실 리뷰라는 생각도 없이, 자신이 느낀 바를 최대한 솔직하게 전달하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http://www.djuna.kr/xe/board/13591048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한 편의 글을 구성하는 방식, 문장. 모두 제가 생각하던 바에 가장 부합한 글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arden91/22155147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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