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 슈피츠,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몇 시간만 지나도 산처럼 쌓이고 마는 읽을거리들이 시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못지않은 정도로 불안했습니다. 아예 끊지는 못하고 조금 줄였습니다. 개인적인 SNS 활동의 짧은 역사입니다. 이후 몇 가지 괴담(에 가까운 뉴스들)이 전해졌고, 그것은 이 결심이 현명했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직원 채용 과정에서 SNS 검열 후 채용 결정을 취소한 회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가 하면, 모바일 메신저 회사가 대화 기록을 검찰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대거 ‘사이버 망명’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그렇습니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남긴 SNS 기록은 우리에게 어떤 혐의를 씌우기에 충분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디지털 세상에 속한 우리 각자의 위치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디지털 정보에 관한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만일 포털에 검색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지우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한 시간? 하루? 글쎄요. 담당자를 찾는 데만 며칠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정보는 얼마든지 무한 복제될 수도 있고, 먼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영원히 남아 존재를 드러낼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한 가지 상상을 더 해봅니다. 누군가가 포털에 공소시효, 살해방법, 연쇄살인범, 미제 살인사건 등을 검색했습니다. 그는 살인을 계획하는 예비 살인범일까요? 만일 그가 다만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였다면? 네. 디지털 정보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정보를 해석하는 인간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데이터는 우리에 대해서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30쪽)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마약상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마약을 거래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에서 미세저울, 작은 플라스틱 봉지 등 불법 마약거래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존은 특정 저울을 둘러보는 사람에게 마약거래 경험자들이 필요로 했던 다른 모든 물건도 제안한다.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100쪽)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의 저자 말테 슈피츠는 이동통신회사, 카드사, 공공기관, 여행사, 병원 등에서 부지불식간에 보관하고 있던 자신의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이동통신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최근 6개월의 사용기록은 3만 5,730건에 달했습니다. 그 정보가 저자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엄청나게 정교한 자료라는 점은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또 비행 시 작성되는 승객예약정보에는 여권번호는 물론이고 15년도 넘은 비행기록, 그가 공항 검색대 어디에 줄을 섰는지, 어떤 직원이 저자를 검색했는지까지 모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데이터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이 ‘탐험기’에서 저자는 종종 SF 소설에 등장할 법한 상상을 하는데요. 그 모든 것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당면한 현실이기에 무척이나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수사기법)’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침실에서 회사까지, 우리가 다니는 모든 곳에 함께 하는 휴대전화 하나만으로도 우리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가요.
저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마치 청어 몇 마리를 잡기 위해 쳐진 그물에 함께 잡혀 나오는 물고기 같은 신세”라고 말합니다. 국가는 ‘예비적으로’ 모두를 감시하고, 국민은 모두가 잠재적인 피의자가 됩니다. 디지털 세상에 무죄추정의 원칙은 없습니다. 과연 새로운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진보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어떤 사건에서는 그 덕분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도 했지요.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개인은, 그물에 함께 잡혀 나오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요? 그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요?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저자 송명빈은 개인이 ‘잊혀질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삭제하려고 해도 삭제되지 않는 디지털 정보 앞에서 잊혀질 권리는 아주 협소한 한 줌 권리에 불과합니다. 한 개인이 디지털 정보 삭제를 요구한다고 해서 순순히 들어줄 기업도 아니지요. 2015년, 대형 카드사들의 고객 정보 약 1억 건이 유출돼 떠들썩했던 사건을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수가 약 5,00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체 1억 건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도 카드를 만든 것이 아니라면 중복된 고객 정보가 전혀 삭제되지 않고 카드사에 보관 중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아니, 대체 왜? 이 정보는 그대로 기업의 자산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자산을 애써 삭제할 이유는 없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정보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아기에게 입힌 옷이 아기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침대가 심장 기능을 점검하고, 변기가 소변 검사를 하는 세상이 곧 옵니다. 이런 마당에 개인이 자신의 디지털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면, 디지털 정보가 지금처럼 결코 소멸하지 않고 무한히 복제될 수 있다면 디지털이라는 정글에 개인은 무기력하게 대상화되고 말 일입니다.
개인들은 힘을 합해 정보 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이 목소리가 커져서 기업이 얼마나, 언제까지 우리의 정보를 보관하고 돈벌이하고 있는지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자기 검열과 개별 정보 삭제 요청뿐일지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앞으로도 나는 트위터에서 내가 독감에 걸렸다거나 두통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거나 팔이 부러졌다는 등의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으로 전송되는 그러한 정보들은 언젠가 분명히 우리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테니까.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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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112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