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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Dec 31. 2016

희망도 절망도 없이, 성실함

아베 코보『모래의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모래 치우기 위한 삶

불친절하지요. 세상의 정체가 불친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어른이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어느 순간 이후 세상은 자주 그랬습니다. 게다가 이 불친절은 대상을 가리지도 않는 것 같으니 참, 밉습니다. 넘어져 우는 사람에게도 손 내밀지 않고, 다친 사람을 두고도 제 갈 길을 갑니다. 그 틈바구니에 크게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늘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워들을 때마다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모래 구덩이 아래서 그저 모래 퍼내는 일을 이어가는, 모래 안의 삶을 살게 되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 아베 코보 소설 『모래의 여자』입니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습니다. 남자는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별 생각 없이 밟은 작지 싶던 뱀의 꼬리가 뜻밖에 커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뱀 머리가 자기 목덜미에 있더라는 식의 당혹감입니다. 이런 당혹감은 언제나 삶과 가깝기 때문에 너무나 생생합니다. 혹시 간편한 두께에, 제목에 호기심을 느껴 책을 펼쳤다면 금세 편안한 생각이 저 당혹감으로 전복되는 걸 느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이래서야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잖소!”
(『모래의 여자』, 43쪽)


모래 치우기 위한 삶. 이런 무의미가 또 있을까요. 아침부터 온종일 모래를 퍼냅니다. 꾸준히 집안을 침범해오는 모래에 묻히지 않으려면 종일 모래를 퍼내야 합니다. 겨우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 사이 쌓인 모래들이 또 한 가득. 그러니 남자의 항의도 무리는 아닙니다. "어디 이래서야" 이것이 사람 사는 꼴이냐고,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외치는 남자의 항의에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동의의 고갯짓을 하게 됩니다. 당장 모래 치우기를 때려치우고 모래의 집을 떠나면 될 일 아닌가, 모래를 치우지 않아 마을이 무너진대도 내 알 바 아니다, 모래를 치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고 반박하게 되지요.

그런데, 모래를 치우는 일에 삶을 바친 사람이 있으니 이것은 어찌된 일인지.  


묵묵히 각자의 과업을 수행하는 중

그러다 이 꾸준함, 이런 성실함 자체를 이야기 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발견했습니다. 아주 정갈한 산문이자 꽤 재치있는 글 틈에서도 하루키가 전하는 '소설가의 태도'는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장편소설을 쓸 때 어떻게든 하루 원고지 20매를 씁니다. 글이 잘 써져 더 쓸 수 있을 때도 20매,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도 20매. 자신과 약속한 이 분량만큼을 씁니다. 작가에게는 이 규칙성이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목표한 분량을 꾸준히, 끈질기게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루키는 글 안에서 이사크 디네센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래 치우기를 삶의 중심에 놓기로 결심한 소설 속 인물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쓰는 작가도, 불친절한 세상에서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스러지는 사람들도 그저 제 자리에서 묵묵히 각자의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라는 사실.


시간의 무게를 이기고 있을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자그맣게 아른거립니다. 2015년 9월, 2822일(무려!)의 투쟁 끝에 복직하게 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유명자, 박경선 씨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김진숙 씨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다 309일 만에 땅을 밟았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시간의 무게를 이겨냈습니다. 그 시간동안 지쳤을 수도, 절망했을 수도 혹은 희망을 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마을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바치고, 심지어 승리를 해냈으니 우리 사회는 이분들을 영웅이라 불러도 좋을 겁니다.

물론 더 큰 희망은 별로 ‘없습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공사 지연의 책임을 물으라며 해군은 34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했고(기사보기), 3500일(2016년 9월 당시) 넘도록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을 한 정치인이 비난했다 사과하는 촌극이 있었으며(기사보기), 2010년 직장 폐쇄한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은 계속된 투쟁 끝에 지난 5월부터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진행 중입니다.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잇고 있는 이화여대 학생들은 어떠한가요(놀랍게도 이들에게서 촉발된 입시 부정 등 의혹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고 2016년 말 한국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처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곳에, 더 치열한 싸움이 시간의 무게를 이기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싸움과 수많은 이야기가, 이분들의 빛나는 성실함이 어쭙잖은 힘의 논리나 세상의 불친절 따위에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그저 범상한 많은 사람들이 이기도록 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한 가닥 희망을, 성공의 기억을 간직하고 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이 지난한 싸움들에 시선과 응원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2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의 성실함에 재를 뿌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지켜보고, 잊지 않을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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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140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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