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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an 06. 2017

당신의 세월호는 어디쯤 왔습니까?

『눈먼 자들의 국가』,  『금요일엔 돌아오렴』

소금처럼 따가운 사연

너무 슬플까봐 겁이 났습니다. 뉴스를 피하려 했고, 친구들의 대화에 섞이지 않으려 했고, 다른 것에 괜한 관심 두려 했습니다. 분명히 그랬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문득문득 떠올랐고, 어김없이 상처 안으로 소금처럼 따가운 사연이 밀려왔습니다.

책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을 때 그랬습니다. 200일 정도가 지나있었습니다. 가벼운 책이었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이었고, 이제는 들여다봐도 괜찮을 것 같아 외출하는 길에 챙겼습니다. 버스에 올라 읽었던가. 퇴근 인파로 가득한 만원버스 안에서 저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물론 부끄러웠는데, 부끄러워서 더 슬프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이 죽은 뒤에 내게 남을 세계, 그 황폐함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맥락도 없이 불쑥, 너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중략)말 그대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서 오라. 그 정도로 이기적이라서 세월과 함께 가라앉은 학생의 마지막 메시지가 사무치는 것이다. 나 좀 구해달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안하다는 메시지라서. 죽음이 분명한 순간에도 그녀는 부모가 남은 평생 자신의 죽음 속에 살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눈먼 자들의 국가』, 89-90쪽)


이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함 받아야 할 존재가 내뱉은 미안하다는 말을 생각하자 목이 턱, 막혔습니다. 그즈음 뉴스는 인양이냐 수색이냐를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바다는 사나웠고, 오랫동안 실종자 추가 수습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법정에서는 세월호 선장의 사형이 구형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황지현 양이 발견되었습니다. 295번째. 실종자는 10명에서 9명으로 줄었습니다. 황지현 양이 발견된 10월 29일은 그의 생일이었습니다. 이 아홉 명의 생명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낯선 이들의 손길이 뜻밖에

시간은 하는 일 없이 자꾸 흘렀습니다. 저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천국의문’ 전시에 갔습니다. 2014년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함께 진행된 전시였는데 관람객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던 큐레이터는 ‘천국의문’ 앞에서 세월호를 말하더군요. 규모가 커 어려움이 많았던 ‘천국의문’ 국내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받은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커다란 금빛 문,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아름다움이 너무나 처연해서, 잊히고 있는 생명들에 미안해서, 아픔을 위로하는 낯선 이들의 손길이 뜻밖에 고마워서 또 많이 울었습니다.

 

이후 “세월호 사건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처벌될 때까지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한 어느 유명한 외국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식으로 모른 척 세월호를 잊고 지내다가 더 큰 죄를 짓고 말 것이라는 불안함을 깊이 갖게 됐습니다.

저는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건강해져서, 놓쳤던 것들을 챙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1주기. 그동안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꺼내들었습니다. 꼼꼼하게 적힌 김건우, 유미지, 신승희, 김소연, 신호성, 이창현, 문지성, 박수현, 길채원, 이준우, 임세희, 김다영, 김제훈 학생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하더군요. 어쩜 이럴 수가 있나.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이 참 교활”(6쪽)해서 아픈 사람들을 아픈 채로 두지 못하고 괴롭히고, 조롱하고, 외롭게 했다는 생각에 도저히 괜찮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건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괜찮은 상태는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는데 나만 괜찮을 리도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그랬어요. “건우 아빠, 나는 아흔살 백살까지 살 거야. 내가 건우를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더니 “아흔살? 너무 많지 않아”라고 해요. 그래도 나는 그때까지 살 거라고 했어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42~43쪽,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이야기)


책을 덮고, 저는 이렇게나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그 압도적이고 지독한 고통을 기록한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세상에 말해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꼭 돌아와주세요

세월호 즈음, 지인에게 전한 메일 일부를 여기에 다시 적습니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평생 괴로워하며 살아온 분들 때문에, 죄스러운 세상에 막 발 딛어 괴로울 동생들 때문에, 저는 늘 빚지고 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종종 그 외의 사람들을 욕하고 원망하면서 자기 위로를 하고요. 결국은 아직 살아있는 나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로 다음 날을 맞습니다.

다만 그 낮은 감정 상태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기쁠 때마저도 내가 진 빚이 떠올라 다시 미안해하면서,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후에 이렇게 어리석은 세상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직 살아있는 내가 가진 의무라고 믿고 지내고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2반 허다윤, 6반 남현철, 6반 박영인,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그리고 이영숙님, 권재근님, 권혁규 어린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의 이름들.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돌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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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166호와 스물두 번째 304 낭독회에 발표한 글을 다듬었습니다. (웹페이지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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