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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an 16. 2017

껍질 벗긴 오렌지

찰스 무어, 커샌드라 필립스 『플라스틱 바다』

나만의 플라스틱 전쟁

집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나무젓가락은 보내지 말라고 얘기합니다(이 말을 저나 판매자가 종종 까먹기도 합니다). 그래봤자 음식은 모두 플라스틱과 비닐로 된 일회용품에 포장되어 오지요.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는 유리잔에 달라고 청합니다. 역시 그래봤자 어렵지 않게 일회용잔 밖에 없다는 카페를 발견하곤 합니다. 빵집에서 빵을 살 때 비닐백은 거절합니다. 빵이야 무겁지도 않으니 가방에 넣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봤자, 빵은 종류별로 비닐 포장이 되어있습니다(내가 먹을 건데 빵이야 좀 섞여도 괜찮습니다만). 저는 언젠가부터 바깥에서 생긴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를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기도 합니다. 일반 쓰레기통에 넣으면 분리수거가 되지 않을 텐데 어디에도 분리수거 통이 없으니 그럴 때면 그렇게 합니다. 지금 나만의 플라스틱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이 되는 것은 물입니다. 정수기도 없고, 매번 물을 끓여 마실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아 사먹고 있는 페트병 생수는 도무지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분리수거 하는 수밖에요. 이건 정말 문제입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깨끗하고 순수한 물이라는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 병들이 곳곳에서 엄청난 숫자로 넘쳐나자 이내 좋지 않은 아이디어로 보이기 시작했다. 상점이 없는 길거리, 하천, 해변, 바다에도 플라스틱병들이 넘쳐났다.(『플라스틱 바다』, 176-177쪽)


2016년 3월, 미국 홀푸드 마켓에서 ‘껍질 벗긴 오렌지’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을 화나게 했습니다. 구매자가 껍질을 벗겨 먹으면 그 수많은 플라스틱 용기는 없어도 되지 않느냐. 여론이 나빠지자 홀푸드 마켓은 이 껍질 벗긴 오렌지 판매를 중지합니다.

이 장면에서 몇 해 전 읽은 책 『플라스틱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책의 저자는 스스로 “해양 포유류”라고 여길 정도로 바다와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바다에서 처음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했던 것이 1997년이었으니, 참 오래 되었습니다. 저자는 해안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물러진 표백제 병, 일본식 그물 부자 여러 개, 신발창을 오려내고 남은 발포 고무 시트, 조리용 사워크림 통”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낍니다. 이것들은 이 먼 바다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깨끗하고,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소중한 바다를 점령한 플라스틱 쓰레기라니. 그렇게 그는 환경운동가가 됩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

바다에서 플라스틱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미세플라스틱, 해양 생태계 오염 등 여러 굵직한 문제들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팽창하는 플라스틱 산업입니다. 이제 우리 일상은 플라스틱 없이 유지 불가능한 상태가 됐지요. 재활용 하면 된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책도 지적하듯, 플라스틱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재활용되지 않습니다. 종류가 워낙 다양합니다. “열경화성 수지와 열가소성 수지만 해도 매우 광범위한 분야여서 그 안에 수백만 가지의 응용 제품들이 있”습니다. 신소재라고 하는 새로운 플라스틱까지 계속해서 개발되는 마당에 ‘재활용 되지 않느냐’는 반론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언뜻 소용없어 보이는 나만의 플라스틱 전쟁을 계속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봤자’의 상황이 번번이 발생해도 꿋꿋하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산업에 저항할 용의가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저자는 말합니다. “지구를 살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저 포장된 제품을 덜 사”라고. “컴퓨터 같은 물건들을 작동이 되는 한 오래 사용하고, 음식은 최대한 지역 농산물 시장에서 사거나 직접 재배하라”고. 그런 말을 생각하면 ‘껍질 벗긴 오렌지’ 판매를 중단시킨 여론의 힘은 참으로 희망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나 좋아하는 환상적인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구는 우주 교통을 위해 간단히 삭제되지요. 운 좋게 그 사실을 알고 지구를 탈출해 히치하이커가 된 주인공의 모험은 흥미롭지만,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지구가 그렇게 되어도 아쉽지 않을 곳이 되면 안 됩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우리 생명의 근원, 바다가 망가져서는 안 됩니다. 당장의 편리에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요. 우리 모두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내야 합니다.  


http://m.yes24.com/Goods/Detail/11029932


*<빅이슈> 136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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