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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Nov 06. 2017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 『혼자를 기르는 법』,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거기에 비범한 용기가

월 스트리트에 위치한 잘나가는 변호사 사무실에 한 사람이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모습으로 찾아왔을 때, 변호사는 “이 조용한 청년”을 자신의 필경사로 두어 기쁠 뿐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여태껏 “보거나 들어 알던 필경사들 중 가장 이상했던” 사람, 바틀비였지만 말이지요. 이 놀라운 인물 바틀비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것처럼 문서로 실컷 배를 채우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출근 사흘째 되는 날, 문서를 검증하라는 변호사의 지시에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필경사 바틀비』, 29쪽)라고 말합니다.


『혼자를 기르는 법』의 작가 김정연의 소개글 중 ‘이유가 있는 것들만 하려고 노력한다’라는 문구를 보고 바틀비를 떠올린 건 순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웠습니다. 상사에 대고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선언한 바틀비, 세상에 대고 이유가 있는 것만 하고 싶다고 선언한 김정연. 이 둘에게 시선이 머무는 이유, 그것은 무엇보다 거기에 비범한 용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열일’의 결과

아주 많은 순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울리는 상사의 카톡 메시지에 답하지 않는 편을 택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터진 일에도 휴가를 반납하지 않는 편을 택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은 성실을, 언제나 성실만을 요구합니다. 최선을, ‘노오력’을, 경쟁과 승리를 크나큰 미덕으로 삼는 세상 때문에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곳이 연 2,113시간의, OECD 34개 가입국 중 2위 수준의 최장기 노동시간(평균 1,766시간)을 자랑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굳이 꺼내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2015년, OECD 발표)


그러나 그 ‘열일’의 결과가 무엇인가.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 자살하는 사람들, 과로사 하는 사람들, 사이버공간을 넘어 현실공간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모두 선택권과 시간을 빼앗긴 결과로 표출되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


코너에 몰릴수록, 마음의 체력이 약할수록 역설적으로 매번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증가하고, 실패할 경우 감당해야 할 부담은 커진다.(중략) 그래서 이들은 더 신중해지고, 각박해지고, 보수적이며 융통성 없는 판단을 내리기 쉽다.(『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44쪽)


맙소사, 무엇이 비정상이란 말인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동의 않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야말로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 그것은 때때로 어렵지만 행동해야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저는 언제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고, 자신을 ‘평균’에 맞추려 애썼습니다. 평균적으로 야근을 하기 때문에 자리를 지켰고, 평균적으로 회식에 남았기 때문에 앉아서 상사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습니다. 불합리한 상사의 지시에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은, 그러니까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를 지금의 저는 너무 미워하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그래야만 한다는 압박에 굴복한 20대 초반의 저를요. 비정상이라는 딱지가 두려웠습니다. 정을 맞을까봐 마음 속 모난 부분을 혼자 열심히 갉아야했음에도 그렇게 어느 한 부분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나를 탓하기만 했었죠. 맙소사, 무엇이 비정상이란 말인가요. 어느 누가 정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요. 이럴 때마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우리는 누구나 상대적으로 비정상적이다’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너무 늦게 만났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와 자기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 사회의 가능성이 어느 쪽에 더 많을지는 자명합니다. 그리고 그게 더 좋습니다.


바틀비의 저항은 실패가 부담되고, 정체 없는 불안 때문에 일에 성실한 동안 자기 삶에 도무지 성실할 틈 없던 모두에게 놀라운 전환을 일으킵니다. 용기 있는 저 한 마디는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하지요.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요.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안 하는 편을 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안 하는 편을 택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만으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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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152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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