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앤 포터, 『캐서린 앤 포터』
반갑습니다!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의 '책책책' 코너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름은 '어떤, 책임'(작명은 오은 시인님... 최고...)!!!
한참 꽃이 좋은 계절이에요. 그래서 준비한 '꽃놀이 갈 때 들고 가면 좋을 책'입니다.
방송은 오늘, 이제 막! 4월 13일(금) 올라갔습니다. 많이 들어주세요!
http://www.podbbang.com/ch/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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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개할 책은 『캐서린 앤 포터』입니다.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오는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 아시죠? 이 시리즈의 서른 번째 책입니다. 꽃놀이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진이잖아요.(웃음) 피크닉 돗자리, 도시락, 스파클링 음료 또는 맥주 그리고 한 권의 책이 필요합니다. 보시다시피 『캐서린 앤 포터』는 그 사진 한 장에 꼭 필요한, 아주 포토제닉한 책이에요. 8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라 들고 가기까지는 무거울 수 있어도 돗자리 누르기도 좋고요.(웃음) 분홍분홍한 표지가 꽃과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단편선이 아니겠습니까. 책 한 권을 한 호흡으로 읽기에 꽃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아요. 산책도 해야 하고, 동행과 다정한 수다도 떨어야 하니까요.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을 담은 이 책 한 권을 가져가면 딱 좋겠죠.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제목을 하나 골라 잠깐의 망중한을 즐기면 돼요.
이 책에는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 스무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뒤에 소개해드리겠지만 이 작가가 살아낸 치열한 삶을 떠올리면 그의 작품이 꽃놀이의 한 장면을 차지하기에는 조금 무게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남편과 바람난 아내를 죽이는 여성이나(웃음), 혼란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는 남성 등이 나오는 다른 단편은 아무래도 꽃나무 아래에서 읽기는 조금 곤란할 것 같아서요. 개중에 마음을 정말 좋게 만들어줬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휴가」라는 제목의 단편입니다. 먼저 주인공은 어떤 곤경을 겪은 어린 여성입니다. 그 곤경이 무엇인지 판단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린데요. 그는 잠시 도망을 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친구에게 봄 동안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부탁을 해요. 소개를 받아 가게 된 시골집은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부부와 부부의 아이들과 부부의 장성한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 또 그들의 아이들이 북적북적 대는 곳으로 이 집은 마을 사람들에게 소작까지 놓을 수 있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대가족입니다. 하나같이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고.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주인공의 눈에 한 사람, 가정부 '오틸리'가 들어옵니다. 구부정한 등, 끊임없이 경련하는 앙상한 두 팔, 주름지고 훼손된 얼굴. 어렸을 때 병을 앓았던 건데요. 가족들은 오틸리가 없다는 듯 행동합니다. 듣자 하니 말도 못한다고 하고요. 이방인일 뿐인 주인공은 모두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찰자로 서서히 이 집에 스며듭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실은 오틸리가 이 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너무 무시무시하죠. 그때부터 주인공은 방법도 모르면서 오틸리에게 다가가고자 하고요. 마침내 오틸리에게 잠깐의 휴가를 선물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마지막 장면을 읽는데 정말 마음이 좋았어요. 오틸리는 방도 주방 구석의 허름한 곳이고, 대가족의 세 끼 식사를 혼자 다 담당하는 힘든 생활을 하잖아요. 그런 오틸리를 주인공이 잠깐 마차에 태워 나가는데 오틸리가 정말 좋아해요. 하늘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면서 말이죠.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그러니까 제목이 ‘휴가’인 것은 주인공의 휴가이면서도 오틸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휴가를 가리키는 것이죠.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었다, 라고 새삼 새길 정도로 조직감이 좋고 문장도 뛰어난 작품인데요. 곳곳에 꽃 아래에서 읽으면 좋을 문장들도 정말 많아요. 이런 문장만으로도 봄을 만끽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요. 잠깐 들려드릴게요.
촉촉한 연둣빛 원뿔 모양의 싹이 돋아난 과수원 나뭇가지들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짧은 거리의 오솔길에 접어들면 곧 그보다 더 작은 샛길이 나왔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더 미끌미끌한 그 길 양편에는 뽕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가지 끝마다 녹색 털이 난 애벌레처럼 꼬부라진 열매들이 이제 막 맺히고 있었다. 내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플란넬과 사라사 강보로 단단히 감싸인 채 유모차에 앉은 아기는 모자 아래 비뚜름한 연푸른색 눈을 빛내면서, 아랫니 두 개를 내보이며 방글방글 웃었다.(707쪽)
캐서린 앤 포터는 연보를 읽는 것이 아예 한 편의 대하소설이었거든요. 5-7살 사이에 단편을 썼던 소설 천재였는데요. 16살에 한 결혼이 폭행과 학대, 유산으로 얼룩진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섯 번 결혼, 다섯 번 이혼했고요. 그러는 동안에 당대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를 했고, 퓰리쳐상도 받았고, '여류' 작가라는 호칭마저 거부한 일화도 눈에 띄어요. ‘꽃놀이’라는 오늘의 주제 때문에 찾은 책인데 정말 멋진 한 명의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알아둬야 할 작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섬세한 문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달드리지 못했지만 사실 제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 점이거든요. 즐거운 책읽기, 『캐서린 앤 포터』로 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