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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an 12. 2017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림자 노동』, 『최후의 가족』

역시 공통의 경험인지

모두의 명절은 안녕들 하십니까?

먼저 명절을 보낼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넵니다. 생각해보면, 명절을 마냥 좋아했던 건 초등학교 때로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이후의 명절은 하고 있는 고민을 또, 진지하게 하도록, 그것을 사실 크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성실히 설명해야만 하도록 나를 괴롭히는 어떤 날이 되어버렸지요. 이것은 역시 공통의 경험인지 명절만 되면 사람들은 친지들의 망언과 그에 대한 방어법을 우스개로 이야기합니다. 한편 ‘여자들’의 명절은 어떤가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 식상할 정도입니다. 명절만 지나면 이혼 소송이 증가한다는 뉴스도 너무 많이 들었지요. 과도한 가사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증상은 물론 우울감, 스트레스 등의 정신적 증상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몰려오는 이 죽일 놈의 명절이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싫습니다.’


지극히 개별적인

친지들의 망언이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는 점, 명절에 벌어지는 대부분의 노동을 여자들이 담당한다는 점은 무척 징후적입니다. 이반 일리치는 일찍이 이를 ‘그림자 노동’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림자 노동의 예로는 여자들이 집에서 하는 대부분의 가사 노동, 장보기, 학생들의 벼락치기 시험공부, 직장 통근 등이 있다. 이밖에도 어쩔 수 없는 소비로 인한 스트레스, 의사의 지겨운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기, 관에 대한 순종, 강요된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그리고 ‘가정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수많은 활동들이 포함된다.(『그림자 노동』, 176쪽)


그러니까 노동은 가치를 인정받는 반면 그림자노동은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게 하기 위한 보조 역할에 머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림자노동이 없으면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는 곳까지 가기가 어렵지요. 결국 그림자노동을 노동과 같은 선에서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반 일리치로부터 30년 이상 훌쩍 지난 지금의 한국에서 그림자 노동을 읽는 일은 그래서 꽤 우울합니다.


개인이 체험하는 삶의 유형은 빠른 속도로 변했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 후 (평생)직장에 취직해서, 30세 전에 결혼을 하고, ‘노산’인 35세가 되기 전에 출산을 하는 삶은 지극히 개별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됐습니다. 2016년 한국의 삶에서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삶은 오히려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대부분의 개인들이 그림자 노동을 기반으로 한 모든 ‘가족’이라는 이름, ‘가정생활’이라는 활동 앞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모두가 이를 견디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을 뒤집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독립적인 개인의 탄생

무라카미 류의 소설 『최후의 가족』은 그런 점에서 건강합니다. 가족이 ‘반드시’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는 아버지 때문에 일그러진 한 공동체가 건강함을 회복하는 과정이 뾰족하게 펼쳐집니다. 들여다볼까요.

첫째 아들 히데키는 대학에 들어간 후 오타쿠가 되어 방에서 나오지 않기 시작합니다. 이 가족에게 잠재된 문제는 그때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지요. 아버지는 그럼에도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아들은 이에 저항하다 폭발해 어머니를 구타합니다. 어머니는 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 가족 모두를 (‘가족’이 아니라)‘개인’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합니다. 그 거리감이 폭력의 열기를 식히기도 하고, 이 공동체 안에 있는 각자의 삶을 비로소 스스로가 자기 두 발로 설 수 있게 합니다. 『최후의 가족』은 그러니까 독립적인 개인의 탄생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자체로 폭력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어요. 원래 그런 것의 타이틀을 얻어내기 위해 싸운 역사, 아직도 원래 그런 것의 영역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들을 위한 역사와 투쟁이 늘 주변을 맴돕니다. 이 모든 것을 예민하게 인식하지 않고서 그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그 자체로 폭력임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것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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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126호에 실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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