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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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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un 01. 2021

100%의 대화

후추일기 열한 번째


만약에.

후추와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어디 가지 않아."

"안심해."

"겁 먹을 필요 없어."

"나만 믿어."

"여기는 안전한 곳이야."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아."


집 안에서조차 어떤 소리에 놀라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고, 등의 털을 세우는 후추를 보면 꼭 그런 마음이 된다. 어떻게 하면 얘한테 "이곳이 너의 집"이라고, "너는 안전하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하품도 하고, 손바닥도 보여주면서, 소리 내 웃기도 하면서 열심히 후추의 안심을 쌓아 나가는 중이지만.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고 간절히 믿지만. 그래도 후추가 불안해 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편, 후추와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후추에게 꼭 듣고 싶은 말도 있다.


"난 (이런) 소리가 좋아."

"당신이 외출한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어."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해."

"지금은 산책 가고 싶지 않아/가고 싶어."

"당신이 (이렇게) 할 때 나는 조금 불편해."

"지금 (이것을) 해줘."


눈치껏, 또는 경험으로, 공부로 후추가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익히고는 있지만 때로는 헷갈린다. 이것을 얘가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이 인간이 좋으니까 참아주는 것일까.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후추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해서 자주 후추에게 말을 건다. "후추야, 지금 무슨 생각해?", "후추, 이렇게 하면 좋아?", "후추, 우리를 지키려고 할 필요 없어. 내가 너를 지킬 거야. 너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같은 말을. 까불다가도,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다가도, 괜히 바깥에 대고 으르렁거리다가도 내가 이런저런 말을 주절거리면 뜻밖에 후추는 알아들은 것처럼 잠잠해진다. 그게 신기한 탓에 후추 외에는 아무도 들을 이 없는 집에서 나는 종일 중얼중얼 말을 하며 지낸다.


안타깝지만 우리의 대화는 도착지를 확신할 수 없고, 자주 허공에 흩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말은 언제까지고 너에게 닿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자주 아쉽다. 쓸쓸하기도 하고. 나를 좀 더 이해시키고 싶어서, 너를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 안간힘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도 대화에 실패할 때가 있지 않나, 하고 말이다.


인터뷰 하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이것은 아주 진지한 의문이기도 하다. 공적인 언어가 확실한 목표 아래 오가는 인터뷰 현장에서마저 발신/수신 오류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대를 향해 최대한 정확하게 내 궁금증을 물으려 애쓰지만 때로 나의 질문은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것 같다. 예상한 답변과 전혀 다른 곳에서 출발한 대답이 돌아올 때도 많고, 놀랍고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반짝' 하고 우리의 대화를 열어줄 때도 있다. 엄청난 행운의 순간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덜컹' 하고 대화를 잠시 멈춰버릴 때도 있다. 그런 인터뷰는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어느 때는 상대의 답을 내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었구나, 싶어진다. 현장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가 실은 훨씬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녹음 파일을 듣고 나서야 알아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그저 숨어버리고만 싶다. 가끔은 녹음에 기대 대화를 이어나갈 때도 있다. 프로답지 못하게.


인터뷰가 그러한데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나눈 대화를 곱씹게 되는 일, 엄마와 통화를 한 뒤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 남편과 다투고 화해하는 모든 일에는 다 대화의 '어긋남'이 있었다.

우리는 정말로 나의 뜻을 제대로 이해시키고 있을까. 정말로 상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되새김 해보면, 그런 순간이 아예 없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 후추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다 서로 눈을 맞출 때, 우리는 분명하게 대화한다.


(나) 후추, 잘 잤어?

(후추) 응, 당신이 얼른 일어나 놀아주길 기다렸어.

(나) 늦잠 자서 미안. 후추 사랑해.

(후추) 괜찮아. 나도 당신 좋아.

(나) 오늘도 재미있게 놀아보자.

(후추) 오늘도 신나겠지? 신나게 놀자!

(나)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될 거야.


산책할 때 나는 "이쪽으로 조금 더 가보자"고 몸짓으로 말하고, 후추는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몸짓한다(아쉽게도 아직 반대가 아니다). 소파에 엎드린 후추가 "이제 그만 그 네모난 물건(컴퓨터) 쳐다보고 와서 나랑 놀자"라고 눈빛을 보내고 나는 "이것만 끝내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 한다. 외출하는 나에게 "날 두고 어디 갈 거야? 나 무서운데"라고 후추는 말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왜 이제 왔어? 뭐하고 왔어? 누구 만났어? 어디 갔었어?"라고 후추는 말한다. 후추의 눈빛, 바쁜 몸짓, 흔들리거나 내려가는 꼬리로 나는 분명한 후추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어떤 순간 100%의 대화를 한다. 목소리만 없을 뿐 몸에서 몸으로 직접 전달되는 즉각적인 대화를.


"진정한 대화에서는 불꽃이 일어납니다. 대화란 그저 정보만 나누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화에 대하여』라는 책을 쓴 시어도어 젤딘은 '대화'와 '말'을 구분하며 이렇게 말했다.

불꽃이 일어나는 것, 을 대화라고 한다면 후추와 나는 어떤 순간만큼은 그 누구와 나누는 대화보다 더 '진정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그 대화는 설명하자면 아주 육체적이고, 즉각적이다. 안전한 거리 속에서 음성 언어를 사용해 사람과 나누는 대화와는 차원이 다른 질감의 대화들이다. 굳이 상상해보면, 영화 <아바타>에서 서로의 촉수를 연결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닐까. 아. 그런 환상적인 순간들을 나는 AH에야 비로소 만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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