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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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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ul 17. 2021

너무 많은 걱정은

후추일기 열아홉 번째


지난 일기를 정독하다가(내가 쓴 일기 읽는 거 좋아한다...) 문득 그 많던 걱정들이 이제는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겁쟁이 후추가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두려움에 떨던 일, 후추를 집에 혼자 두고 하는 외출 준비, 산책 나가기 전에 벌어졌던 길고 긴 밀당, 산책길에 만난 예상 못한 일들에 긴장하던 일, 그 모든 우리의 어설픈 춤... 이 중 지금껏 나를 괴롭히는 걱정이 몇 개나 되는지 살펴보자면. 거의 없었다. 후추는 나와 살면서 많은 소리들을 배웠고, 그 소리에 일일이 놀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익혔다. 내가 낮에 집을 비울 때면 - 나도 후추가 혼자 있을 때 힘들지 않게 애쓰지만 - 후추도 혼자 있는 시간을 꽤 의연하게 보내는 것 같다. 산책 가기 전 줄을 연결하기 위해 벌이는 눈치 싸움도 한결 사소한 수준이 되었고. 산책길에서는 자전거가 지나가도, 자동차가 지나가도 후추는 많이 개의치는 않고 길을 간다. 이제는 멀리서 들려오는 강아지 짖음 소리도 못 들은 척 할 정도다(가까이 들리는 짖음소리는 아직이지만)


후추와 함께 한 지 네 달 남짓. 그동안 우리가 겪은 변화(이것을 성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가 새삼스럽고, 기특하다. 어떤 걱정은 지금도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걱정은 따져보니 일주일도 안 갔다. 지나서 보면 당시에는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걱정들이 실은 모래알 같은 거였음을 상기하게 된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모래알처럼 기억되는 것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돌덩이처럼 무거운 걱정들은 아니었다는 것은 안다. 


걱정은 매일 새롭게 생겨난다. 지금은 또 새로운 걱정들을 한다. 후추가 갑자기 앞발을 털이 다 젖도록 핥고, 노력이 소홀하기도 했지만 아직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일명 '하우스')을 잘 하지 못하고, 어쩌면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서 내게 집착을 좀 하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후추와 함께 한 처음 한두 달처럼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게 된다. 발 핥는 것을 막기 위해 잠시 중성화 수술 후에 사용했던 넥카라를 착용하도록 했고, 하우스나 분리불안 훈련은 앞으로 우리에게 놓인 많은 나날에 긴 호흡으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된다고 여유를 갖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또 어떤 일은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믿기도 하고. 

역시 가장 큰 변화는 완벽함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는 점일 것이다. 누구도, 무엇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걱정은 참 이상한 녀석이다. 

어쨌든 걱정은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너무 많은 실패는 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다가올 어떤 일을 대비할 수도 있게 한다. 한편 지나친 걱정은 나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저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힘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지쳐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떨 때는 걱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해버린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 받곤 한다. 후추와 단둘이 보낸 첫날처럼...


그런 생각 끝에, 이제는 어떤 걱정을 너무 많이는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 대한 믿음을 붙잡는 일. 생각해보면 나는 어떻게든 해내긴 했다.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성공할 때도 있었고, 도무지 해낼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무사히 완수한 적도 있다. 걱정은 자꾸 그것들을 지운다. 실패한 일만 내 안에 남아 있도록 한다. 안 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않나. 

걱정이 지우는 그 분명한 사실들을 꽉 붙잡고 더 씩씩하게 살아보자. 

(또 이것은 후추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후추 너는 너의 길을 반드시 찾는 강아지라는 것, 그걸 나는 알아, 라는 마음이랄까.)


스페인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그림책 『어려워』에서 주인공 어린이는 모든 것이 다 몹시 어렵다. 버스 기사가 건네는 인사에 답하는 것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고는 있지만)부르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내려고 할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숨이 막혀버린다. 엄마는 말한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말문이 열릴 거라고."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내 어린 시절의 장면이 떠올랐다. 두부를 한 모 사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이 왜 그렇게 크고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졌을까. 어느 날은 가게에 두부가 다 떨어졌고, 어느 날은 손님이 많아 가게 주인이 바빠 보였다. 변수는 너무 많고, 번번이 그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리니, 심부름은 언제나 너무 어려운 것.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가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는 작은 장애물이었다. 『어려워』에서 엄마의 괜찮다는 다독임이 주인공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처럼 들리고, 그것도 분명한 어린이의 감정이지만. 하지만. 나는 가게에서 두부를 한 모 사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니 과거의 어린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괜찮아,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실수해도 돼. 너무 많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라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지금 내가 과거의 내게 해줄 수 있게 됐다면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내가 해줄 말에 기대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게다가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건 있을 수가 없고, 그냥 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밤이 올 테고 다음에는 내일 아침이 오고 그리고 그다음 날, 또 다음 날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지구는 해 주위를 돌고 도마뱀은 햇볕이 따스한 벽에 붙어 있고 생쥐는 달밤에 케이크 부스러기를 먹으로 밖으로 나오겠지."


리베카 솔닛의 첫 번째 픽션이자 그가 다시 쓴 신데렐라 이야기 『해방자 신데렐라』에서 위의 문장을 만나고 나는 '영원히'의 자리에 '걱정 없이'를 넣어보았다. 그렇게도 어색함 없이 읽혔다. 영원만큼이나 걱정이 없는 순간은 불가능한 이야기. 그냥 걱정이 오고, 그렇게 어두운 밤과 밝은 아침이 오고, 지구는 돌고, 계절은 바뀌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오늘의 걱정이 무겁게 느껴져도 이내 가벼운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무게, 미래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거야. 미래의 네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 애를 더 믿어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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