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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후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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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Sun Jul 31. 2021

끝을 알고 사랑하는 일

후추일기 스물한 번째


첫 번째 후추일기에 "한 생명이 온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일"이라고 적었었다. 그 문장 안에는 아주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여러 이유 가운데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압도한 것은 이별의 두려움이었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삶을 오랫동안 꿈꿨으면서도 후추를 데려오고 싶다는 메시지를 임시보호자 님께 보내기까지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망설이던 가장 큰 이유.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어질수록 슬퍼졌다. 높은 확률로, 내게 별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강아지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슬픔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 여러 번 물어보았다. 정말로 여러 번. 

한 번도 답을 내린 적이 없다. 


후추와의 매일이 행복한 지금으로서는, 후추와 함께 살기 전에 했던 압도적인 고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숙제일 뿐이다. 


이런 문제가 있다. 남편은 내가 후추를 너무 오냐오냐 한다고 자주 걱정한다. "안 돼"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나는 제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언제나 잘못하는 것은 인간이라고. 혼낼 바에야 발생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잘 살핀 후 예방해두면 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가 잘 해결하면 되고. 우리는 함께 책 『카밍시그널』을 정독하며 의견을 교환한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가진 '허용'의 범위가 달라 왕왕 부딪친다. 잠자리에 들려는 우리 사이를 파고드는 후추에게 너의 집으로 가서 자라고 할 것인가, 그냥 다닥다닥 붙어서 함께 잘 것인가. 정답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옥신각신 하지만 역시 정답이 없는 일이라 어느 날 후추는 시끄러운 인간들을 피해 자기 집에 가버리고, 어느 날은 그저 무심하게 그 자리에 엎드려 눈을 감아버린다. 


고양이 둘, 사람 하나와 함께 사는 친구에게 "우리 요즘 맨날 이래"라면서 소소한 사건들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놀라며 되물었다. "'안 돼'라는 말을 안 한다고?" 당장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 그런 반응을 돌려 받고 잠시 당황한 나는 항변하듯 이런 이야기를 했다. 


후추를 집에 데려오기로 했을 때 나는 후추 복지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반려인이고 싶어 하루에 몇 시간씩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다. 완벽한 반려인이란 있을 수 없고, 후추가 온 순간 미리 한 준비들은 모조리 재구성되어야만 했지만. 어쨌든 배운대로 해보려 분투했다. 그 모든 교육들. 예를 들면 외출했다 돌아온 뒤에는 종일 집에 있었던 강아지를 최대한 쳐다보지 말고 무심하게 행동하라는 얘기. 얼마간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하염없이 후추를 외면했다. 후추가 졸졸 쫓아다니는 그 '토토토토' 발자국 소리가 귀에 쟁쟁 울리는데 그냥 모르는 척을 했던 것이다. 이제 그러지는 않는다. 후추가 충분히 내 바지와 손에 묻은 냄새를 맡도록 하고, 차분하게 눈 인사도 나눈다. '무심하게'를 내 나름으로 '차분하게'로 해석했다. 그게 후추와 나에게는 맞는다. 

그밖에도 내가 현관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는 분리불안 교육, 배변 패드에 정확히 배변을 했을 때 간식으로 보상하는 배변 교육, 먼 곳에 있을 때 이름을 불러 자신의 이름을 인식하게 하는 콜링 교육, 앉아/기다려/손 교육 등 여러 교육을 거쳤다. 후추는 어떤 것은 곧장, 어떤 것은 꽤 천천히 익혔다. 우리에게 잘 맞는 교육도 있었고, 잘 맞지 않는 교육도 있었다. 나는 인간 관계가 그러하듯 관계마다 연결감을 맺는 방식이 다르고, 후추와 나에게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그러면서 "안 돼"라는 제지도 후추와 내게는 맞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직 어리기도 한 후추이므로, 이 애가 관심을 두는 일은 최대한 해보도록 내버려뒀다. 휴지를 물어 뜯기 전에는 근처에서 킁킁대도 관찰하도록 하고, 마른 빨래 위를 마구 밟으면서 다니기 전에는 가까이 와서 이것들이 다 무엇인지 알도록 두고, 내가 먹는 음식도 입을 대기 전까지는 냄새 맡도록 두고. 마침 후추는 그런 내 마음을 잘 이해하고 따라와주었다. 더구나 후추에게만큼은 인내심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나에게 후추가 치는 '사고'는 대부분 나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결론이 되곤 했다. 나는 후추가 그런 행동을 다시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안을 찾는 일이 후추에게 당장 "안 돼"라고 말하는 것보다 옳은 일처럼 느낀다. 

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후추에게 부정적인 언어와 기운을 주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나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후추의 시간이 끝났을 때, 바로 그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후추를 혼내고, 후추를 밀어내고, 후추에게 "안 돼"라고 말하던 모든 순간을 안타깝게 여기고 슬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애의 털을 조금 더 쓰다듬어주고, 조금 더 자주 서로 눈을 맞추고,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까봐. 그때가 너무 자주 의식돼서 나는 안 돼, 라는 말을 못 하겠어. 


친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후추의 시간이라는 것은 안 그래도 빠른데, 엄밀히 관찰하면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다 해도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훨씬 적어진다. 오전에 2-3시간, 낮잠 후 다시 밤에 잠들 때까지 5-6시간이니 평균 8시간 정도나 될까. 하루 8시간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순간을 좀 더 충실하게 살고 싶어진다. 


물론 매 순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낼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모든 기쁨을 다 누리려는 욕망은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후추의 시간 속도를 의식하는 일은 내게 무척이나 중요해졌다. 이런 생각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하게 해주었다. 후추에게 할 행동을 선택하게 해주었다. 이 순간 후추가 행복한지, 후추와 우리 가족이 행복한지 자주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는 후추 덕분에 멋진 곳으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매일 같은 곳을 산책해도 후추는 행복하고, 우리가 함께 있기만 하다면 우리가 있는 그 공간에 평화가 깃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끝을 알고 사랑하는 일, 마지막을 늘 의식하며 함께 하는 일은 나를 일상에 성실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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