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람은 날 때 잿빛을 띤다고 생각한다. 먹구름 가득 머금은 흐린 날의 색으로 시작해 커가면서 색깔을 얻고, 종국엔 본인만의 색에 도달하는 여정이 삶의 의의라고 본다. 영유아기 땐 타인으로부터 무작위로 색을 받을 테니 덕지덕지 묻어있는 꼴일 것이고 청소년기로 가며 하나둘씩 존재감을 띠는 색이 생겨날 것이다. 성인이 된다 해서 자신의 색을 단번에 찾으리란 법은 없거니와 한 가지 색을 갖는단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본인을 충만히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크고 작게 성장하는 순간들, 내면을 가득 채우는 시간들을 찾으며 쉽지 않은 과정 끝에 궁극적으로 자신의 색을 얻게 된다. 물론 죽을 때까지 색들은 오고 갈 것이다. 본인의 색을 뺏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기꺼이 상대의 색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무수히 주고받을 거다.
나이를 먹으며 가장 재밌는 건 해를 거듭할수록 나와 더 친해진다는 거다. 친한 사람일수록 더 잘해주고 싶고, 애틋하고, 친애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 작년보다 올해의 내가 더 아꼽다. 어여삐 여기는 이 마음으로 돌아보는 나는 참으로 흥미롭다. “나는 이런 작은 것에도 이렇게나 들뜨는구나,” “이럴 땐 정수리까지 짜릿할 정도로 좋아하고, 이럴 땐 바닥을 뚫을 기세로 무너지는구나,” “이런 건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꽤 괜찮아하네?” 등의 일련의 탐구 과정으로 내 안에 색이 더해진다. 내 자체가 팔레트인 셈이다.
팔레트 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색들은 모두 나름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졌다. 그러니 강제로 뺏기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하고, 쉬이 바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색이란 건 어두울수록 삽시간에 잠식하는 법이라 자신의 팔레트를 주기적으로 들여다봐주지 않으면 잿빛은 빠르게 차오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두운색이라도 색깔엔 옳고 그름이 없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통상적인 전제하에. 그러므로 타인의 색을 손가락질할 명분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의 팔레트를 보고 비웃는다면 최대한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봐주자. 나의 팔레트에 무지성의 난마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