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것들

7화

by 사월

오묘한 색을 띠는 노을,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나무, 햇볕을 담은 바람, 잘 익은 망고의 식감, 복슬복슬 강아지의 정수리, 델리만쥬 향기…… 심중 가시를 녹이고 경계를 허무는 것들이다.


언제였는지도 모호할 만큼 어렸을 때 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영어를 배웠다. 미국에서 직접 사 온 DVD인 터라 자막도 영어가 최선이었다. 수십 번을 돌려보며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대사와 노래를 줄줄 읊곤 했다. 그러다 문득 My Favorite Things 의 가사가 궁금해져 영단어 사전을 펴 공부를 했고, 난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 “아, 사람이 장미꽃에 맺힌 빗방울 한 줌에, 고양이의 수염에, 끈으로 묶인 갈색 포장지로도 위안 받을 수 있구나.” 이 가사를 쓴 사람의 시선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세밀하고 짙은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좀 더 따뜻할까? 나도 자라면 이런 어른이 될까?”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어떤 어른으로 자랐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열심히 자라고 있는 중이라서 그럴 거다. 다만, 만족 한계선이 꽤 낮은 편이라는 건 확실하다. 사람 손 모양을 닮은 단풍잎이 바람을 타고 손을 흔들면, 어두운 터널에서 밝은 풍경으로 나와 색이 입혀지는 순간에, 제 몸만 한 비스킷 조각을 이고 지고 나르는 개미를 구경할 때, 도톰하고 꾸덕한 흑맥주의 거품을 머금으면, 아직 아가인 친구의 아들이 내 품에서 잠들면 머리 꼭대기까지 행복이 차오른다. 이렇게 차오른 행복은 쉬이 사라지지도 않아 길게는 몇 달을 이 기억 한 조각으로 살게 한다.


물론 싫은 것도 많지만 내 세상이 부정으로 점철되기 전에 이런 조각들이 들어와 상쇄시키니 참 다행이다. 녹슬지 않는 조개껍데기로 살면 좋으련만 이번 생에 현자가 되긴 애진작에 글렀으니, 이렇게나마 조율해가며 살아간다. 오늘 날 살게 하는 건 뒤따라 걷는 남의 강아지의 챱챱챱챱 발톱 소리.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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