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엄마! 엄마, 나 좀 어떻게 해 봐. 눈물이 안 멈춰.”
오밤중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이다. 훗날 엄마 말씀하시기를, 한 번도 이런 적 없던 애가 이러니 꿈인 줄 아셨단다. 사람이 울다 까무러치는 게 드라마에서나 생기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날은 내가 딱 그랬다. 완전한 제어 불가의 상태로 어디로부터 오는 지도 모를 방대한 양의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의 삼일장을 치르고 온 날 밤이었다.
나는 평소 죽음에 꽤 관대한 사람이라 여겨왔다. 정확히 말해, 오만했다. 누구든 언제든 죽을 수 있기에 세상 무너질 일도, 그렇게 슬퍼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얄팍하고 알량한 위악을 떨었던 거다. 실은 내 무의식 속 죽음이란 단순한 불안의 감정을 넘어 극악으로 치닫는 공포였나 보다. 죽음이란, 나의 세계 속 극강의 두려움들 중 하나인 세상에 혼자 남는다는 것과 직결된 개념이었다. 뿌리를 잃은 나무는 장작으로 쓰이거나 연필이 되거나 집이 되어 몫을 다하지만 다시 숲 속 나무로 돌아갈 순 없다. 할머니는 나의 뿌리였다.
할머니의 부재 이후의 삶이라 해서 겉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나는 맛있는 것을 잘 찾아 먹고, 열심히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산을 타고, 사람들과 울고 웃었다. 눈물에 잠식된 그날 밤을 제외하곤 딱히 울며 지새운 밤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콕 짚어내기 힘든 어느 한곳이 허했다. 금 간 장독에 물 붓듯 채우면 채우는 대로 빠져나갔다. 또는 충전을 해도 금방 닳아버리는 수명 다 한 배터리가 된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떠난 날 나의 뿌리를, 나의 근원을 상실한 거다. 그날부로 난 색은 여전하나 굵은 금이 간 백자가 된 거다.
역시 나란 인간은 가증스럽고 우매하기 짝이 없어 무언갈 잃어 봐야 그것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 깨닫는다. 일 보 전진 삼 보 후퇴도 전진으로 쳐준다면 느리지만 나아가고 있다고 자기 위로를 해본다. 그 밤이 지나고 며칠 후 할머니를 제대로 배웅하며 글을 썼다.
심지 곧은 내 할머니,
영민하신 나의 할머니.
부끄러움 없이 사셨습니다.
어여쁜 명주실 걸치고
곱디고운 연분홍 버선 신고
사뿐사뿐 훨훨 날아가세요.
뿌리 잃은 저는 잠깐 헤매지만
숲을 등지고 나아가 봅니다.
존경했어요, 사랑하고요.
그곳에 잘 계시다 언젠가 한 번은
꿈에 찾아와 볼 한 번 만져주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