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저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볼까
저 파도를 따라 끝없이 떠나볼까
두 팔을 벌리면 날개가 돋아날 걸
가슴을 연다면 쪽빛이 가득할 걸
오늘을 잊은 채 내일도 접어둔 채
지금은 우리가 행복해야 할 그 시간”
가수 정미조의 7번국도. 지겹게도 끈적이던 공기가 드디어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노래다. 쾌청한 하늘 아래 비록 향하는 곳은 회사이지만 바람처럼 살랑이는 정미조 씨의 목소리를 들으면 출근길은 여행길이 된다.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대로변을 장식하고 있는 가로수들은 주기적으로 네모 반듯하게 단장을 당한다. 생기 넘치던 푸른 이파리에 노을빛 물결이 굽이치면 Freddy Martin의 Tonight We Love를 들을 때가 왔다는 뜻이다. 한여름을 잘 보낸 나뭇잎은 지나간 생의 무게가 덜어진 만큼 가벼워져 멋없이 수직으로 툭 떨어지는 대신 나풀나풀 춤추며 하강한다. 이 낙엽들의 공중낙하를 장식하는 데 이 노래만 한 배경음악이 없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는 날엔 Jackson 5의 Blame It on the Boogie, 과하게 들뜨는 날에는 하동균의 From Mark, 우중충한 날씨를 음미하고 싶을 땐 Bruno Major의 Places We Won’t Walk, 상냥한 선율이 그리울 땐 트윈 폴리오의 웨딩 케이크를 튼다. 나는 K-Pop도 사랑하지만 뭐랄까, 이들은 “보는 음악”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이어폰을 꽂고 있는 상황에선 서사가 담긴 친절한 가사와 선율이 담긴 “듣는 음악”을 더 찾게 된다.
유독 빠르게 흐르는 아침이 있다. 여느 아침과 똑같이 씻고, 밥 먹고 이 닦고, 화장하고 옷을 입었음에도 출근 시간이 빠듯한 그런 날 말이다. 평소보다 빠르게 걸어야 하는데 이때 음악은 빠른 템포가 중요한 게 아니다. 템포보단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걸음을 힘차게 치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선우정아 씨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우정아의 봄처녀를 틀고 집을 나선다. 흥겨운 선율에 얹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크레센도로 흥을 쳐올리고, 오르는 텐션에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진다. 노래 끝자락엔 화룡점정으로 그녀가 응원의 주문을 속삭인다.
“걸음은 좀 더 가볍게
걸음은 좀 더 가볍게
걸음은 좀 더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