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나요
우리는 달에 몇 번씩 유서를 씁니다.
더 이상 썩을 곳이 없을 줄 알았던 곳에
구정물이 고이고 그것이 마를 새 없이 문드러져서
아무리 닦아내고 약을 발라도 그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흉터와 딱지로 마음길이 고르지 않아
진심이 나오는 모양새마저 삐죽삐죽 아주 가관입니다.
말 대신 얼음장같은 가시를 내뱉고
무료하게 텅 빈 눈동자는 사실
곧 터져나올 것만 같은 감정의 분수를 숨기기 위함입니다.
속을 드러낼 용기도,
말로 전할 재주도 없어 우리는 유서로 대신합니다.
그렇다고 유서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삶의 끝을 다짐하는 순간을 치유의 도구로 삼는,
상처를 묵묵히 담아내는 백색의 종이만을 위로로 삼는
딱하고 안타깝고 조금은 한심한 아픈 이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