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있어도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도 있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루의 끝자락마저 공활한 하루가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자.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친구에게서 연락 한 통은 왔겠지,
화장실 한 번은 갔겠지, 물 한 모금은 마셨겠지,
하물며 어깨가 결려 스트레칭 한 번은 했겠지.
인간의 뇌는 선택적으로 정보를 저장한다.
하루종일 열심히 근무도 하고 사람도 만났음에도
뇌가 그것을 남겨둘만한 상황으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그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된다.
이런 날의 내 뇌는 매너리즘에 빠져
연명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도
한 때는 고결했던 행위도 담지 않는다.
뇌가 거만해진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류의 거만함은 무기력증을 동반하고
무딤과 예민함이 질서없이 얽히어
과도한 중력에 온 몸이 내려앉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갈 잠시의 휴식인지
그로기 상태로의 시발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하지만 이 판단은 늘 다음날에야 내려진다.
그러므로 일단 오늘의 공활함을 받아들이자.
공활한 순간은 내일이면 채워진다.
일단은 그저 있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