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에서 돌아와 희미해지는 기억들이 아쉬워 남겨보는 그날의 한 장면
2024. 07. 11
파나마, 보케테
남편은 연애시절만 해도 카페에 가면 딸기주스 같은 다소 유치한(?) 메뉴를 주문하던 사람이었다.
커피에 'ㅋ'자도 모르던 사람.
그랬던 사람이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만나 살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커피를 '공부'하며 열심히 마시고
집에서 매일 드립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 험준한 농장에서부터 우리 테이블에 한 잔의 커피로 오기까지
그 긴 과정 속에 숨겨진 커피와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고 했다.
커피의 가치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었고 우리는 홀연히 1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저 놀고먹을 생각뿐이었지만
남편은 여행 내내 가고 싶은 농장들을 직접 컨택하거나
한국에 돌아가서 커피와 관련해 할 일들을 구상하느라 바빴다.
우리는 고마운 이들의 도움을 받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나름 업계에서 유명하다는 몇몇 농장들을 방문했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건 바로 파나마.
그저 커피를 마실 줄만 알던 내가 커핑 스푼을 들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게이샤 커피'를 수확하는 농장의 농장주들과
한 테이블에서 커핑이라는 것을 했다.
아마 내 평생 다시는 없을 일이겠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우리 남편도 참 대단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도 아닌' 우리를 기꺼이 맞이해 주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기꺼이 나눠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커피로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