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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Sep 11. 2022

참을 수 없는 눈의 욕망

영화 <놉> 리뷰와 해석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느낌은 아니었지만, 미지의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연출은 역시나 훌륭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흥미로웠다. 한번 더 보면 더 깊게 의미를 이해하며 볼 수 있을 것 같아 재관람을 할까 했는데, 아쉽게도 영화는 금방 영화관에서 막을 내렸다. 아쉬운 대로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뒤늦게라도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은 영화 <놉>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UFO가 나타나 말과 사람을 잡아들여가고, 주인공 OJ와 그의 여동생 에메랄드는 이 UFO를 촬영해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UFO는 비행접시가 아니라 괴생명체이다. 주인공들은 이 괴생명체에 '진 자켓'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주인공들은 기지를 발휘해 진 자켓에게 먹히지 않고 이것의 존재를 촬영하는 데 결국 성공한다.



1. 눈으로 보다, 렌즈로 촬영하다.


    이 영화의 키워드를 하나 뽑자면 '보다'이다. '보다'는 '촬영하다'로 그 의미가 연장된다.


    OJ는 동물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동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동물은 이를 공격으로 받아들여 난폭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이든 괴생명체든 마찬가지여서 말의 눈을 쳐다보면 말은 포악하게 뒤차기를 하고, 진 자켓을 쳐다보면 그 순간 잡아먹힌다.


    말이든 괴생명체든 사람들은 카메라로 촬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 촬영장에서 말은 자신의 눈에 비친 촬영장비에 흥분해버리는 바람에 쫓겨난다. 한편 진 자켓이 지상으로 내려오면 전기가 먹통이 되어버리거나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하면서 주인공들은 진 자켓을 촬영하는 데 자꾸 실패한다.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테마는 바로, '보려는(촬영하려는) 자'와 '보여지는(촬영되는) 자'의 관계이다. 



2. 대상에서 주체로 : 동물, 비주류 인종, 물건


    최초의 연속사진은 말과 흑인 기수이다. 촬영 기사는 백인이었다. 촬영기사의 이름은 기억되지만 촬영된 기수의 이름은 잊힌다. 보는(촬영하는) 백인, 보여지는(촬영되는) 흑인과 말은 촬영의 주체와 대상 간에 존재했던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사례이다.


    시간이 지나 '고디 이즈 홈'이라는 시트콤이 방송된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침팬지 고디이다. 고디의 생일 파티 에피소드를 촬영하던 중, 갑자기 고디는 광폭하게 변해버린다. 함께 촬영 중이던 백인 부부 역할을 하던 배우들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백인 소녀의 얼굴에는 흉측한 상처를 남긴다. 고디를 통제하려고 온 백인 조련사마저 고디에게 목숨을 잃는다. 현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시안 소년 역할의 주드이다. 고디는 주드에게 악수를 청하던 중 사살된다.


    최초의 연속사진이 동물과 흑인이었고, '고디 이즈 홈'을 촬영하던 중 동물이 백인 배우와 조련사에게 상해를 입히고 아시안 소년만을 남겨두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상이 더 이상 대상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주체를 공격하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시간이 흘러 주인공들은 UFO를 촬영하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촬영하고자 하는 것이 Object(물건, 대상)임을 확신한다. 이 영화에서의 반전은 알고 보니 주인공들이 찍으려고 했던 것은 Object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는 것이다. 이 괴생명체는 자신을 보는 생명체는 모조리 집어삼켜버리고,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해 자신이 촬영되지 못하게 만든다.


    주체가 대상을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대상과의 거리가 유지되어 자신은 철저히 관찰자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대상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생명체임을 증명하며 보여지길(촬영되길) 거부한다. 



3. 찍거나 찍히거나 돈이 되는 세상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 모두 진 자켓을 어떻게든 찍으려고 사활을 건다. 이들은 진 자켓을 찍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한다. 자신을 위협할 것을 알면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촬영에 집착한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비상식적이기 그지없어 촬영에 대한 신념, 강박, 중독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자신이 촬영되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그 때의 추억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주드이다. 주드는 어린 시절에 겪은 참혹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쇼의 주인공이 되려는 열망을 버릴 수 없다.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자, 그는 스스로 쇼를 만들어 호스트가 되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마약 마냥 중독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목표는 돈이겠지만, 어느 순간 촬영 그 자체에서 사람들은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모두 찍고 싶어하거나, 찍히고 싶어한다. 보고 싶은, 혹은 주목받고 싶은 욕망에 중독된 것이다.



4. 좋음과 나쁨을 가리지 않는 희소한 볼거리


    OJ는 '나쁜 기적'이라는 말을 한다. 사건 그 자체로는 비극적이지만 희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일을 말한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사람들에게는 매 한 가지로 쇼에 불과하다. 희소한 광경이라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그것을 보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비극을 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비극이 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흘러 넘치는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의 현장, 교통사고 블랙박스 영상,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의 모습을 흥미롭게 시청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재밌어하지 않았어. 마음 아파했어."라고 항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기만에 가깝다. 실상은 그것이 볼거리가 되기에, 보고 싶은 욕망이 들기 때문에 본 것에 불과하다. 


    영화는 나와는 관계 없다고 생각했던 나쁜 기적이 더 이상 나와 거리가 있는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고 나의 삶에 달려들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진 자켓의 네모난 입은 스크린을 상징하는 듯하다. 나쁜 기적을 구경하고 싶은, 촬영하고 싶은 사람들을 진 자켓은 집어삼킨다. 촬영자든 시청자든 스크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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