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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May 10. 2024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용기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진술문 중 이것처럼 내뱉기 어려운 문장이 있을까?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충실히, 아닌 충실히 이상으로 따른 나에게 이 고백은 고통스럽다.

나의 치부를 훤히 드러내는 것 같은 수치심을 폐 속 깊이 들이마시는 기분이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은 모멸감이 심장으로부터 솟구쳐 손끝과 발끝까지 흐르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제는 용기를 내어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한다.


어쩌면 꽤 어릴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수련회를 가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부모님에 대한 감상적인 말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한바탕 짜내는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몇몇 친구들은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싶다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한껏 취했다. 나는 이 친구들의 감정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 혼자 이상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아서 슬프고 심각한 표정을 쥐어짜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먼저.


이모가 우리 집에 나보다 두 살 어린 친척동생을 하룻밤만 맡긴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잘 놀다가 밤이 되자 이모가 없으면 잘 수가 없다며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결국 이모가 간밤에 다시 우리집에 와 아이를 데려갔다. 나는 너무나도 의아했다. 도대체 왜 엄마가 없으면 잘 수 없는거지?


그러나 나의 진짜 마음을 스멀스멀 의식하기 시적한 것은 좀 더 커서였다.


언제였을까. 퇴근한 아빠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뺨을 때리곤 다음날 아침 용돈 하라며 만 원을 쥐어줬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하는데, 내게는 아빠에게서 나는 냄새가 너무 생생하게 역해서 참기 힘들었을 때?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엄마가 진짜 죽어도 사실 상관 없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 기왕 죽을 거라면 누가 봐도 자살은 아니게, 적당히 교통사고로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자신은 숨어서 없는 척할테니 너가 문을 열어주라며 어린 내게 취한 아빠를 떠넘겼을 때?


그래도 으레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엔 별 거부감이 없었다.

그건 상대방이 안녕한지 궁금하지 않아도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나의 감정도 관습에 따라 어련히 어느 정도의 사랑이겠거니 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사랑을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한 인용문을 보았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몇 명에게 이런 마음을 품었는지 곱씹어보았다. 놀랍게도 우리 부모님만을 제외하곤 안쓰럽고, 그래서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부모님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안쓰럽게 여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더 중요한 것은, 옆에 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늘 부모님과 마주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애썼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늘 피곤한 일이기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야 했다. 가족은 가끔 봐야 좋다며 농담인듯 말했지만, 진심은 아예 안 보면 더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부모님이 안쓰러워 같이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전혀 없었다. 물론 나 스스로가 안쓰러울 때조차 부모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힘든 일이 생겨서 부모님 집에 가서 집밥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는 목말라서 청소를 해야겠다는 말과 같이 이상했다.


사실 부모님도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사랑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땐 내가 잘 기억나지 않으니 그 시절까지 내가 단언할 수는 없다. 어쨌든 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부모님도 나를 딱히 사랑하지는 않는다. 


물론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란 걸 안다. 그러나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가장 안쓰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와 달리, 내 부모님은 그 사실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날 어렸을때 사랑했으니 지금도 사랑하겠거니, 남들도 자식을 사랑한다니 나도 그런거겠거니 하고 자신의 감정을 관습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뿐이다.


우린 한참동안이나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연극을 할 테다.

이 모든 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는 냈지만, 

연극을 끝내는 용기는 또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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