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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Oct 11. 2024

고무줄 이정표에 화내지 않는 법

36. 고대산 (2023.03.17 금)

'몇 키로 남았어?' 산에서 버릇처럼 물어보는 질문. 고대산은 정상까지 남은 거리가 1.8km였다가 0.9km였다가 고무줄처럼 달라지는 산이었다. 이정표를 만드는 사람이 장난기가 많거나, 중간중간 졸았나? 트랭글에 의지하지 않고 산을 타는 것이 야생의 멋이라는 생각에 어플을 지웠더니 얼마나 남았는지 통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의도를 알 수 없는 희망고문에 분노하며 위태롭게 걷다가, 나중엔 충정도 사람처럼 언젠간 도착하겠지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고무줄을 튕겨버렸다. 


시간은 사람에게 달라붙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시간에 집착할수록 몸체에 시간이 꽉 달라붙어 1초가 1,000만 년처럼 느껴진다. 시간과 거리를 넓히는 방법 중 하나는 고개 숙여 시계를 보지 않고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계에 갇힌 시간을 하늘로 풀어주면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간다. 시간 개념에서 자유로워지면 '몇 시쯤 도착하겠구나' 또는 '얼마나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고무줄 거리도 괴롭지 않다. 얼마나 시간이 잘 가는지, 고대산 전체를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고대산 순간이동. zip


⛰ 궁금한 분을 위한 고대산 요약

• 산행 일자 : 2023.03.17 금
• 높이 : 832m
• 거리 : 2.82km
• 코스 : 고대산자연휴양림 - 말등바위 - 칼바위 전망대 - 대광봉 - 삼각봉 - 고대붕 - 원점회귀
• 시간 : 2시간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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