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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Kee Kim Oct 01. 2019

29살이 느끼는 아홉수의 긴 터널 속 순간들.

지금의 터널에는 수많은 아홉수의 모습과 순간들이 찾아온다.

 오늘의 결정이 내일의 시작을 바꾼다.

그 누구도 내일의 순간을 알 순 없다곤 하지만, 우리가 결정하는 오늘의 순간이 어느정도는 내일의 우리 모습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작년 초에 느꼈던, 28살의 젊지만 어리지 않은 나이였던 시간을 지나고, 30이라는 새로운 나이대를 바라보는 (어린)29살이다. 그리고, 근 1년간의 시간동안 29살이라는 시점을 지내온 그 순간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10월 1일의 29살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고 다시 한 번 타자를 열심히 써내려가본다.


1년의 시간 속 터널을 지난 순간

 이상하게도 터널이라는 단어를 쓸 때면, 왜 암울한 순간에 쓰는 것일까? 터널의 속이 어두워서? 그 속에서 달려가는 끝이 보이지 않아서?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아직 사회의 시작을 하지 않은 내 나이 29살(모든 29살이 아닌, 나의 29살이다.). 모든 순간들이 터널 같다. 하지만 터널이라고 해서 일상적으로 말하는 그냥의 어두임이 아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터널속에서 자동차의 온 창문을 닫고, 자동차속 안에서만 들리는 우리의 숨소리, 이야기 소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된다.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왔단 365일 이상의 시간이 나를 더욱 돌아보게 하는 좋은 순간들로 가득찼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이런면이 있구나, 내가 더이상 못하겠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구나, 노력이 다가 아닌게 사실인가라는 사소한 득도를 했던 시간이다. 

 항상 나의 좋은 점을 찾고, 긍정적인 면을 찾는 것도 좋지만, 내가 가진 또 다른 약점, 그리고 단점들을 찾을 수 있는 터널을 용기있기 걸어갸아하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쉽진 않지만, 굳건하게 이를 꽉 깨물고, 두 손을 힘 있게 쥐고, 양 발을 힘차게 내딛으며 그 긴 터널도 지나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지만, 꽤나 많은 슬픔이 있을 것이고, 눈물이 흐를 것이고, 아픔이 느껴질 것이다. 그래도 그 터널을 지난 후의 맛보게 될 밝은 빛과 새로운 길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휘몰아치는 모든 순간들

 그런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는, 자존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무 것도 되지 않으니까. 흥미롭게 보이던 것을 해보려 당차게 달려도, 작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수 년간을 보고 느껴봤던 것들도 해보려면, 하나 둘 나사가 빠지며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이 순간들의 합이 곱하기가 되고, 느껴지고 휘몰아쳐오는 감정들은 제곱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조금이라도 옆으로 움직인다면 휘몰려 올라갈 것 같고, 올라가는 그 순간들에 어찌할 바 모르며 저리 치이고 이리 치이고. 결국 남아있는 것은 속이 없는 겉 모습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느껴봐야하지 않을까? 나 말고도 분명 누군가는 이런 감정을 느낄테니까. 그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함께 공감해주려면, 누구보다 그 상황과 감정들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어떻게든, 이런 상황속에서의 내가 버텨야하고, 그 지나온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간직해야겠다라는 이유들을 찾아보려 한다.



똑똑하지도, 똘똘하지도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버티고 버티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다. 무식하게 하나만 집요하게 파는 성격이고, 끝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잠시 머리를 식히고 다시 돌아와서 끝까지 붙잡고, 또 안되면 잠시 생각하고, 에라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무지하게 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지낸다. 그러나,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똑똑하다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똘똘하다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똘똘이라는 것이 똑똑보다는 부드러운 표현 같으면서도, 겸손해보이는 표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 나는, 똑똑하지도 똘똘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가득찬다. 손쉽게 또는 더욱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순간들을, 내가 아주 영리(?)하게 지나가고, 무식한 힘든 좁은 길만 찾아 다니는 기분이다. 왜 나는 꽃 길을, 그리고 좋은 향이 나고 지나가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나는 그런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라는 나에게 질문이 되돌아 온다.

 미련한 것일까, 멍청한 것일까 혹은 29살은 다 이런 것일까. 아니면, 나의 29살이 꼭 이래야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터널

  나는 더 아름다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일까? 내가 찾는 아름다운 길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말끔하고 새 힘이 돋는 순간들이란 어떤 순간들일까? 지나온 발자취들 동안, 내가 남긴 발자국에는 무엇이 남겨져 있을까.

 이런 꾸질꾸질하면서도 징징대는 글을 쓰는 지금의 이 순간이 굉장히 아쉽게 느껴진다. 혹은 더 과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순간의 패배감을 느끼며 남기는 흔적같다. 하지만, 이 글을 남기는 순간에는 큰 결심을 하는 것이고,  누군가는 이런 패배감 속에서 새로운 터널을 뚫고 지나갈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 남겨본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에는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어줘야 하는 것이 맞다. 결국엔 지금보다 더 희망적인 마음을 갖게끔 유도하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전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을 남겨본다. 내가 느꼈던 나만의 터널의 시간들, 나와 완전하게 같은 터널은 아니나, 터널을 지나며 닫힌 창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나의 모습, 그리고 귀 기울이게 되는 나의 이야기들, 느껴지는 '나'라는 자체. 잊지 않고, 더 자라나기 위해서 남겨본다.


인정하긴 싫지만, 긴 터널 가운데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번엔 못해냈다."


하지만, 이 순간을 다르게 나를 위해 생각하자면,

"모든 순간을 해내라는 법은 없다는 것."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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