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욕심많은워킹맘 Feb 11. 2018

죄책감이라 쓰고 애틋함이라 읽는다

서글픈 기다림을 약속해야 하는 엄마 그리고 아이


퇴근 시간 15분 전, 서둘러 책상 위에 어질러진 서류를 정리하고 컴퓨터 화면에 깔린 파일들을 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일 출근 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나 따로 체크해야 할 일들을 기록한다. 사장님께 오늘 지시한 업무 결과를 구두로 보고할 계획이었는데 통화 중이시다. 결재 서류 속에 구두로 보고하려던 내용을 간단하게 기록했다. 그래도 6시 10분이 되었다. 부랴부랴 퇴근 인증 지문 인식을 하고 시동을 켠다. 

오늘은 작은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할로윈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하필 이런 날, 남편도 저녁에 미팅 약속이 잡혀서 이 시간에 피아노 학원을 마친 아이를 태워 어린이집으로 향해야 한다. 혼자서 다 하려니 발걸음만 분주하다. 이럴 때만이라도 남편이 큰 아이만이라도 맡아주면 좋으련만, 피아노 학원에서 기다리던 큰 아이를 태우고 둘째 어린이집으로 황급히 도착했다. 




주황색 풍선으로 할로윈 파티를 알리며 이벤트 데이답게, 원생과 부모님이 동반 참석하니 북적거렸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우리 민이가 머릿속에 자꾸 떠올라, 애타게 아이를 찾았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틈을 지나 맨 끝방에 할로윈 스티커를 붙여주는 행사를 하는 부담임 선생님 곁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눈앞에 친구들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랑 할로윈 파티로
들뜬 친구들 표정을 가까이에서 하나하나 지켜보는 
민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신난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었을 내 아이였을 거다.  아이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크게 이름을 불렀다. 나를 보고선 벌떡 일어나 '엄마 왜 이제 왔어'라는 말도 없이 그저 내 손만 꼭 잡는 우리 막내, 이 순간만큼은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 마냥 애틋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서로를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렸을 텐데 말로 하지 않아도 느끼는 우리 사이, 한편의 광고가 따로 없다.  


민아, 엄마 많이 보고 싶었지?
엄마 많이 기다렸지?       


                       

엄마의 물음에 내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두 아들과 함께 행사를 참여하고 사진도 찍고, 마치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민이의 엄마가 내가 아니었다면 내 아이에게 서글픈 기다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퇴근 전부터 시작되는 분주함이나 조급함 따위 없이 행사 참여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도착했을 거고, 행사에 제대로 참여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일하는 엄마다. 
앞으로 아이에게 
서글픈 기다림을 
수없이 약속해야 하고, 
나는  많은 죄책감을 가져야 할 숙명이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죄책감이라 기록하지만 오늘 아이와 나의 사랑에는 애틋함이라 기록하련다.
죄책감은 아이와 더 함께 하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지만 물리적인 상황에서는 녹록지 않다.
그 죄책감을 뒤집어 보면 아이와 나 사이에는 '깊은 애틋함'이 된다.
그렇게 오늘 나는 죄책감이 아니라 '깊은 애틋함'을 감사 일기로 기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