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욕심많은워킹맘 Feb 18. 2018

선배 워킹맘이 후배 워킹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일'이 태교였던 워킹맘의 고행길, 끝이 보인다



어느덧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지 10년이 되었다. 큰 아이가 곧 사춘기를 시작하는 십 대 서열에 합류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어제 출근하기 전에 본, 소소한 일상 글 밑에 달린 댓글에 유독 눈길이 갔다. 아직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며 남편과 둘이서 독립 육아를 하는 블로그 이웃의 사연이었다. 과거의 내 모습을 연상케 하는 댓글이라 그럴까? 아이들 키우며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둘 다 막달까지 일하면서 태교 했다. 두 녀석들의 태교는 사치였다. 나에게 태교는 '일'이었다. 심지어 큰 아이는 업무 시간 중에 이슬이 비쳐 부랴부랴 애 낳으러 갑작스럽게 출산 휴가를 들어갔다.(그때는 첫아이라 이슬이 비치면 애가 금방 나올 줄 알았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큰 아이는 많이 아팠다. 하루가 멀다고 약을 달고 살았으며 어린이집에서 각종 전염병은 다 옮아왔다. 구내염, 수족구에 걸려 먹지도 못하고 일주일 내내 39도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면서 맞벌이를 해야 하니 가슴이 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열이 나서 아픈 아이를 어디 맡길 곳이 없어 약봉지를 챙겨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큰 아이는 유독 아침잠이 많다. 출근길은 늘 가슴 아픈 시간이 된다. 출근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급 해지는 나와 달리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겨우 옷을 입히고 등원 준비를 한다. 아직 더 자고 싶은 아이는 짜증을 내며 오늘 하루만 연차 내고 자기랑 집에서 쉬자며 운다. 그렇게 울고 불며 떼쓰는 아이를 겨우 달래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아무것도 챙겨 먹이지 못해서 글라스락에 아이가 좋아하는 짜장밥을 담고, 어린이집 선생님께 꼭 좀 먹여달라고 부탁한다. 어린이집 현관문 너머로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부짖는 아이를 떼어놓고 회사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심정,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저렇게 엄마만을 찾으며 우는 아이를 매몰차게 뒤돌아서서 회사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이게 어미로서 할 짓인지, 

내가 누굴 위해서 
과연 일을 하는 것인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 엄마만을 
애타게 찾는 아이를 떼놓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수천 번 수만 번 
나에게 물어본다.


누구를 위해서 일하냐고.


출근 후 어린이집 선생님이 울고 있는 아이를 걱정하는 나를 위해 사진을 보내주신다.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아는 아이가 엄마 없이 어린이집 식판에 담긴 음식을 숟가락으로 오물오물 떠먹는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 손길이 아직도 여전히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저 많은 아이들 틈에서 혼자서 대견스럽게 사회생활을 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 대견함, 안타까움이 서로 뒤엉켜 결국 눈물로 터저버리고 만다. 나와 헤어질 때만 해도 울고 불며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더 눈물이 났다. 저 어린아이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벌써 속으로 삼키며 견뎌내는 것 같아 가슴이 더 쓰라리다.

하지만 꿈꿔왔던 전업맘의 삶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환상적이지도 않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그리고 치워놓으면 또다시 난장판으로 만드는 끝을 모르는 아이의 체력, 삼시 세끼 매일 같은 반찬을 먹는 지겨움, 육아에 대한 피로, 삶의 공허함,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로 인해 잃어버린 나의 삶을 되찾고 싶은 욕심이 가장 강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무얼 할 수 있지?

이 끝없는 육아의 터널은 
과연 언제 끝이 날까?

경제적 자립을 잃으면서
자존감도 잃어버린 내 삶.

인정받고 질투받을 만큼
당당했던 나의 과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면서 그때는 멋지게 사회생활을 하는 워킹맘을 꿈꿨다. 완벽한 삶이라는 없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늘 복잡하고 '미완성', '불완전' 그 자체가 아닐까? 


워킹맘을 버티게 해 준, 흘러온 시간의 '힘'


워킹맘 삶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워킹맘 삶을 포기하지 않은 건 흘러가는 시간의 힘에 의지한 것도 있었고, 전업맘의 삶 역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살뜰히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에 재미를 느끼는 성격이 아니었다. 일이 좋았고, 또 다른 삶의 활력소였고, 내 삶의 자양분이었다. 

남편과 다툰 날이면 그 불편한 감정조차 잊고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떨어져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을 키우기도 했다. 만약 24시간 육아를 했다면 아이에 대한 애틋함을 그리 깊게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다. 

힘든 고행 길 같았던 워킹맘의 삶도 조금씩 여유를 찾아간다. 그때 내 눈물을 많이 쏟게 만든 큰 아이는 약간의 잔소리만(?) 해주면 혼자서 밥을 먹고,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출근 전 모닝 스터디까지 마친 후 등교한다. 오늘은 방과 후 로봇 수업이 있는 날이라 스스로 교구를 챙겨 등교한다. 큰 아이와 달리 많이 수월한 둘째 아이는 좋아하는 TV 틀어주고 어제 끓인 미역국에 밥을 두 그릇이나 말아먹고 등원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흘러온 시간의 힘이라고 믿는다.




많이 힘들겠지만,
일이냐, 아이냐 끝없는 결론으로
수없이 자신을 괴롭히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은 너무도 빨리 자란다.

그리고 그만큼 내 삶의 내공도,
내 인생의 단단함도 쌓여간다.

  

이전 01화 죄책감이라 쓰고 애틋함이라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