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부터 손가락이 붓기 시작했다.
소시지처럼 왼쪽 손가락이 부으며 굵어지더니 굽히고 펴기도 어려워졌다.
작년 겨울에도 이랬던 적이 있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상생활을 했는데, 왼손에서 시작된 붓기와 통증은 오른손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손가락 마디가 붓고 염증이 생기더니 관절로 그 통증은 옮겨갔다.
나는 시골에 산다.
시골에 사니 가장 좋은 점은 사람이 없다는 것. 애석하게도 가장 큰 단점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없으니 간단한 주전부리를 살 수 있는 동네 슈퍼도 없고, 병원도, 식당도 없다.
모두 차를 타고 나가야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인데, 이상하게 병원은 참 발길이 안 간다.
그렇게 손가락 통증을 3주를 버텼다. (버티던 3주 동안 나는 쉴 틈 없이 '손가락염증', '손가락통증', '손가락붓기', '손가락동창', '손가락관절염'...... 을 검색했다.)
몇 년 전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은 나는 염증에 취약하다. 내가 주로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곳은 눈인데, 이 염증이 계속 일어나면 실명의 위기가 있어 염증관리에 각별히 주의하며 일상생활을 (노력)했다.
염증이 손가락에 꽃 피웠나 보다.
이런, 30대에 관절염인가?
마침 다른 질환으로 대학병원(아산병원)에서 6개월 간격으로 추적검사를 하던 날짜가 다가와서 대학병원 간 김에 류마티스내과도 가봐야겠다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집 밖을 나갔을 때 모든 걸 해결하면 기분이 좋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아산병원에 도착했다.
언제나 대학병원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며 위로도 받고, 마음이 슬프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솟구친다.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는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하는 것과 마음이 슬픈 이유는 '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참 많구나'하는 생각 때문 아닐까.
같은 걱정거리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더 감사하게 된다.
처음 면역질환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희귀 질환 환자라고?' 하며 놀랐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불치병 환자가 됐다.
그런데 불치병 진단을 받던 날 나는 생각보다 초연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잔병치레가 많은 사람이 건강관리를 잘해서 더 오래 산다더라.
실제로 나는 면역질환 진단을 받은 이후로 훨씬 더 건강해졌다. 면역질환은 모름지기 스트레스 관리와 식단관리와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동안 담쌓았던 건강관리를 시작하니 매일매일 하루가 상쾌했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음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를 지키는 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생겼다.
3시간에 걸쳐 올라간 병원은 1시간 대기를 했고 진료는 1분 안에 끝났다.
그리고 그동안 추적관찰했던 진료기록을 받아서 앞으론 집 근처 병원으로 다니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었다. 19년도부터 나를 괴롭히던 <그것>과 드디어 헤어질 수 있게 됐다.
병원 진료가 끝나고 근처 미술관에 가 이만익 전을 관람했는데,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이 글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찌 되었건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아름답고, 정겹고,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만익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어찌 되었건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아름답고, 정겹고, 감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생애가 되길.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노라 이야기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길 다시 한번 소망해 본다.
추신, 내과에서 혈액검사를 했는데 관절염은 아니었다. (염증수치 최상으로 좋음!) 그동안 무리를 하며 일을 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손가락이 부은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영상 편집을 너무 많이, 오랫동안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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