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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푸 Jan 10. 2023

서울을 떠나다. 나는 왜 30대에 시골에 내려갔을까_2

-서울 도봉구에서 세종으로

도봉구에서 살았던 2년 동안 우리는 참 산책을 많이 다녔다.

맞벌이를 하며 바쁘게 지냈던 시기를 보내고 내가 휴직을 하면서부터 키우던 강아지의 '개권'은 참 높아졌다.

하루에 한 번씩 산책하던 개권(개의 권리(?))은 하루에 두 번으로 늘어났고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 바빴다.

많은 공원들 덕분에 마치 우리는 도봉구 공원 도장 깨기 단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공원은 집 근처에 있던 '창포원'이라는 곳이었는데, 강아지들이 많이 오는 공원이라서 다른 강아지 냄새 맡기 취미를 가지고 있던 내 강아지에겐 최고의 공원이었다. (도봉구에는 정말 애견인들이 많다.)

우리가 사랑했던 공원 창포원

주말마다 창포원엘 가서 벤치에 앉아 마음껏 햇빛도 쬐고 커피도 마시며 주말 오전을 보냈는데,

아마 남편의 시골에 대한 로망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벤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노래도 듣고 새소리, 물소리를 가득 듣고 있던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곳에서 남편이

 이직 준비를 해볼까 해,
그런데 서울이 아니고
지방으로 내려갈 것 같은데 괜찮아?


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초본을 떼면 그동안 이사한 주소만 4장이 나올 만큼 이사를 자주 다녔다.

이사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새로운 환경은 오히려 나에게 활력을 주는 이벤트였기 때문에 1년 넘게  살았던 도봉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슬슬 지루해질 찰나 남편의 이직에 대한 물음은 크게 고민할 것 없는 물음이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써준 편지들 (남는 거라곤 이것뿐)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 졸업하며 바로 취직해서 여러 직장을 다녔고, 흐르고 흘러 3교대를 하는 카페 점장이 내 마지막 직업이었다. 3교대로 근무하던 카페는 연중무휴였고 더해 하루에 매장 문을 닫는 시간은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꺼지지 않는 조명이 있던 곳이었다.  돈을 벌고 빚을 갚는 일뿐이었던 나의 20대와 30대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학자금 대출을 다 갚겠다는 내 목표를 실현시켜 주었지만 일을 빼곤 나에 대해서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던 시기였다.

3교대를 하며 몸과 마음은 점점 피로가 누적됐고, 이렇게 계속 일만 하다간 내 삶에 일 빼곤 아무것도 남지 않겠다 싶었다.


그깟 커피가 뭐라고.
하루에 몇백 잔이 되는 커피를 만들었지만
정작 내가 마시는 커피는
커피 향기도 느낄 수 없는
식어빠진 커피였다.


나는 스스로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지방으로의 이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여러모로 시기가 딱 맞았다.


나 직장도 없는데,
못 갈 데가 어디 있어.
이직 성공하면 바로 내려가자!


남편이 이직하고 싶어 했던 직장은 채용인원이 1명뿐인 바늘구멍 같은 곳이었다.

남편은 40대가 넘었고, 나는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대가 되니 채용공고는 바늘구멍만큼 작아졌다. 그래서였을까 '이직 성공하면 바로 내려가자' 하며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음 한편엔 한 명 뽑는데 합격하겠어?라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남편은 열심히 공부했다. 퇴근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바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고 1차 서류전형에 합격, 2차 NCS에 합격, 3차 면접까지 합격해버린 것이다.

그 1명 뽑는 채용공고에, 바늘구멍처럼 작은 채용공고에 합격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출근일이 청천벽력 같았는데, 출근일은 합격 문자를 받고 일주일 뒤였다.

(1차부터 3차까지 채용심사 기간은 한 달 넘게 진행했으면서...)

우리는 서울 도봉구에 살고 있었고, 직장은 세종.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세종으로 내려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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