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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뉴 Jan 30. 2021

17세기 페미니스트 화가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우피치 미술관(Uffizi museum)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기억에 남은 작품이다. 성경에 나오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일화는 주로 스토리자체나 유디트의 관능적인 팜므파탈의 면모가 강조되던 소재인데, 다른 화가들과 달리 젠틸레스키는 유디트를 강하고 단단한 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렸다. 같은 소재를 그린 여러 작품들이 모여있으니 단연 눈에 띄었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우피치랑 바티칸에는 주로 중세시대 성화 작품이 많았다. 성화를 원래 즐겨 보는 편이 아니었다. 일단 지금 시대가 아닌 옛날 거여서 관심이 가지 않았고,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과장되고 극적인 인물 표현이 미술을 위한 미술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름 미술사에 관심이 있었어도 배경지식이 해박한 편이 아니기도 했고.

하지만 보다 보니 같은 주제, 같은 이야기로 작가마다 풀어내는 방식과 강조하는 지점이 달라서 그걸 비교하는 재미를 찾게 됐다. 작품의 시간과 공간이 달라도 공통된 주제와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비교 지점들이 보였다.

우피치 미술관의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대표적인 예시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다. 유디트라는 여인이 적군의 진영에 들어가 수장인 홀로페르네스를 꼬셔서 그가 잠든 사이에 목을 베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이야기에 대한 관점이 특히 카라밧지오, 클림트, 젠틸레스키의 작품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카라밧지오 (Carabaggio)


이 소재가 처음에 주로 표현된 방식은 '스토리' 그 자체였다. 아래의 카라밧지오 작품이나 여타 다른 화가들은 유디트가 목을 베고 돌아왔다는 팩트, 행위 자체를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디트라는 여인은 어리고 발랄한 어떤 한 여인으로서 그냥 그 장면의 일부 정도로, 스토리의 주인공 정도로 머물렀달까. 비중이 유디트에 치중되어 있지 않고 홀로페르네스에도 시선이 할애된다.



클림트 (Klimpt)

혹은 적장을 홀릴 정도로 성적 매력이 있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우피치에 있던 작품은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아래의 클림트의 유디트다. 첫인상이 관능적인 여인이 뭔가 도발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이 여인 또한 단순히 섹시한것 너머에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를 성취한 데서 나오는 왠지 모를 당당함이 있지만 여전히 포인트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이다. 남성 화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유디트라는 여인의 외형.



젠틸레스키 (Gentileschi)

위의 작품들과 달리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에서는 피가 솓구치는 과감한 장면과 덤덤하고 단호한 유디트의 표정에 시선이 간다. 어찌보면 우악스럽기까지 한 제스쳐다. 관능적인 여인이라기 보다는 목표의식이 단단한 한 사람으로 보인다. 거의 비즈니스 마인드로 오로지 목을 베는데 집중하고 있는 유디트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목을 베기 쉽게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꽉 움켜쥐고, 감정 하나 섞지 않고, 칼로 잘 안 잘리는 목뼈를 처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유디트의 모습이 유난히 독보적이었던 이유는 유디트라는 소재를 차치하고도 그 관에 있던 여타 성화들과 결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다른 시대와 비교하면 찾아보기 어렵진 않은 표현방식이 될 수도 있지만 젠틸레스키가 활동한 17세기에는 절대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여인상이다. 그 당시의 사회상에서 어떻게 저런 시각이 가능했을까 찾아봤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년 7월 8일 ~ 1652년 - 1656년 사이

자화상 (1638-39)

젠틸레스키라는 화가의 배경에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우선 우피치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는 여성 화가이며 페미니스트 화가다. 그는 어린 나이에 그림을 배우다 아버지의 동료들에게 강간당하고 오랜기간 소송이 진행됐다. 재판 과정에서 산부인과 검사에 무고죄 무죄인걸 입증하려고 손가락 고문까지 당하면서 치욕을 겪었다고. (젠틸레스키가 강간당한건데 왜 고문을 당했는지는 정말 의문,,, )결국 고생 끝에 승소했는데 아버지가 그냥 합의해주고 젠틸레스키를 그냥 결혼시켜버렸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자의로, 또한 타의로, 보통의 여성의 삶을 접고  페미니스트 화가가 됐으며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당대의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경험들을 했다. 다소 폭력적인  화풍을 가지게 된 이유다. 여타 여류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업적에 비해 저평가 되고 있는 화가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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