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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뉴 Dec 14. 2021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뮤지엄

Mauritshais museum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Hague Mauritshais museum

역시나 네덜란드 답게 헤이그도 자전거 천지였다.


자전거 무더기 틈으로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색의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뮤지엄플레인(Museumplein)에서 라익스뮤지엄(Reijks museum) 같이 스케일 큰 박물관만 보다가 비교적 소박한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ais)를 보니 되게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어 이상했다. 이미 충분히 화려한데도 비교가 되다니, 현지인 다 됐었네. 2018년 3월이니, 네덜란드 간 지 한 달 밖에 안 됐었으면서.


실은 3.1절을 맞아 나름 네덜란드 교환학생 답게 애국심 인증한다고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기념관 들르러 간 김에 마우리츠하위스도 갔던 거였다.​


마우리츠하위스 바로 옆에는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과 관련된 곳이 있다. 저 문을 넘어 더 가면 원래 특사가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불발 됐었던,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곳이 나온다.

미술관 내부의 색감이 매우 화려하고 예뻤다.


각 관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과 복도인데 미술관 창립자와 가족 등 관련 인물의 초상화들이다.

오르새 뮤지엄(Orsay museum) 같이 모두가 아는 유명한 배경이 아니면서 못지 않게 예뻐서, 괜히 좀 더 조예가 있어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Meisje met de parel - Johannes Vermeer

아쉽게도 딱 내가 간 날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검사 중이었다.


가뜩이나 작은데 저렇게 먼 발치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명화는 검사를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어 신기했다. 최첨단 장비들을 설치하고 몇 주간을 실시하고 있었다.


꼭 이 작품을 봐야겠다고 온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외에도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은 미술관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고양이며 러버덕이며, 소품샵에 패러디가 한 가득이었다. 특히 러버덕은 너무 엽기적이고 허를 찔려서 바로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



11, 12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가장 특징적이었던 작품들.


평소 정물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정말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지 싶은 작품들이 많았다.

주로 저렇게 껍질 까다 만 오렌지 같이 표현하기 까다로운 물체들이 일부러 등장한다. 새로운 작품 볼 때마다 작가들이 본인 실력이 이정도까지다, 배틀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램브란트 

Rembrandt​

램브란트 특유의 갈색빛 색감이 좋다. 램브란트 룸이 따로 있어서 작품들이 모여있던 걸로 기억한다.

램브란트의 자화상 1, 2

한 화가의 여러 시기에 걸친 작품들이 모여 있을 땐, 특히나 그의 자화상에 눈길이 간다.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묘하게 달라져가는 게 느껴진다. 또한, 같은 대상이다보니 화가의 화풍 자체의 변화를 더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건 사실 램브란트 자화상보다도 반 고흐 자화상들을 보며 더 확실히 느꼈다.

화가로서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그려내면 어떤 기분일지,, 화가들은 자화상을 빨리 그릴 수 있을까 궁금하다.

만약 나에게 다른 건 몰라도 나를 직접 그리라고 한다면, 그리면서도 오만 생각이 다 들 것 같고, 복잡하고, 그렸다 지웠다를 n번은 반복할 것 같다.


특유의 차분한 브라운 톤.

이건 사실 램브란트 작품인지 기억이 확실하진 않다.


근데 저 어린 귀족의 손이 너무 야무지고 옷 색감이 예뻐서 엽서까지 샀다.


네덜란드 풍속화

동양의 풍속화가 황소라면 서양은 젖소다. 가장 눈에 띈 차이라 웃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홍도, 신윤복 작품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이렇게 일반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룸이 있었는데,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문화와 더 직접적으로 친해진 느낌이었다.



그 외

표정이 생생하고 도슨트 해설이 재밌었던 작품인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면서 시간의 중요성을 얘기했다고 했었나,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룸에 진입할 때마다 문 위에 여기 저기 저런 감초같은 그림들이 있어서 재치있었다.

곳곳에 이런 등불 디테일이 귀여웠다.

유독 액자가 눈에 띄었다. 지금으로 치면 작품을 담는 액자 또한 당대의 방식의 마케팅, 브랜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니까.


루브르에서 시대별로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도 든 생각인데, 그림 못지 않게 액자빨도 중요하지 않나. ​미술관들을 많이 다녀보니, 비슷한 고만고만한 작품들을 많이 보다보니 느낀점이다. 적어도 나 같은, 관심과 열정이 있지만 전공자는 아닌 일반 대중의 안목에서는 그렇다. 작품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올려주는건 그 작품이 어떤 액자와 조명으로, 미술관의 어떤 편집 기준과 큐레이팅으로 전달되는지에도 달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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