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땐 정말 좋아했던 사람인데.
치맥을 부르는 무더운 날씨.
'맥주가 무슨 술이야 음료수야' 방심하고 부어댔더니 살짝 취한 감성 돋는 밤.
술기운 빌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술이 깨면 분명 이불 킥 각이지만!!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지.
'살찐 병아리 날다'에도 들어있는, 나에게 가장 잔인하고 가슴 아픈 이별을 선사한 "그"
그때 나에겐 어지간히 두꺼운, 슈퍼 울트라 콩깍지가 씌었었다.
내 눈에 "그"는 현빈이요. 김수현이요. 만수르였다.
왜? 어디가?
라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러니 콩깍지다.
무슨 연예인 따라다니는 팬클럽처럼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신파보다도 처절하게, 잔인하게 차였었다.
죽을 것 같았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빠르게 흐르고, 빛의 속도로 흘러..
"그"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됐다.
그런데.....
다시 만난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현빈도, 김수현도, 만수르도 없다.
듬직하게 잘 자란(?) 남자가 있을 뿐이다.
'설레던 마음은 어디 갔지? 떨려서 말도 못했는데 나 이러다 방귀도 트겠어.'
그가 너무 편해진 나는 거하게 술을 마시면 나오는 개와 하이파이브를 했고,
누가 봐도 "개진상"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다.
하필 요즘 이래저래 마음의 상처가 많아서
누구 한놈 걸려봐라 제대로 물어줄 테다 벼르고 있었는데 제대로 "그"가 걸린 것이다.
그날 개고생 한 "그"가 들으면 노할 소리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이 더 좋다.
비록 콩깍지는 세월 앞에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오히려 속 깊은 "사람"을 남기는 지금이 더 좋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 있는 그대로의 "나"
세월을 이기고 오래가는 것은 "콩깍지"가 아니라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