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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찐 병아리 Jan 09. 2016

아빠의 출근길

당당한 발걸음이 그립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 등교를 일찍 하는 날은 종종 아버지 출근길과 맞물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말이죠.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1988)보다는 더 현대식이지만 조금 시골 분위기가 나던 동네에 있었습니다.
코딱지만 한 시멘트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들, 직장인들까지 빼곡히 모여서 ‘버스가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30분에 한 대.
운이 보통이면 40분에 한 대.
운이 개똥이면 50분에 한 대.
이렇게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시간을 까딱 잘못 맞춰서 나왔다가는 지각해서 두들겨 맞기 딱 좋죠.


그 날은 음악시간 준비물 때문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등굣길에 나섰습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이 개똥 같은 날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뭔가 조짐이 이상하더니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겁니다.
할 수 없이 큰길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큰길까지 걸어가려면 마라톤 선수가 뛰어서 20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가뜩이나 다리 길이가 섭섭한 사이즈였던 저는 정말 울고 싶을 지경이었지요.
학교 가는 것도 너무 싫어 미치겠는데 걸어서 먼 길을 가려니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나오고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그러다 무심결에 같이 걷는 아버지 얼굴을 보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아버지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당당하고 밝게 웃으시면서 군대에서 행진하듯이 팔을 90도 높이로 번쩍번쩍 올리며 걷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빠는 뭐가 저리 좋으실까? 회사에 뭐 맛있는 거라도 숨겨놨나? 회사라는 곳은 학교보다 좋은 곳인가 봐. 나도 빨리 회사 가고 싶다.’


아버지께서 너무 당당하고 행복하게 출근하시길래 회사라는 곳은 저렇게 빨리 가고 싶은 좋은 곳인가 보다라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학교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느꼈죠.
‘아. X됐다. 뭐가 행복한 곳이야.’
어른들 말씀이 틀리지 않더군요.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쉬운 줄 아니?”
하루하루가 소리 없는 전쟁터 같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의 월급을 받던 날,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당당한 출근길은 어쩌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군대 행진을 하듯 씩씩하게 걷던 모습은,
어쩌면 힘든 아버지에게 아버지 스스로가 하는 위로가 아니었는지 하고 말입니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알기 시작하면서 아버지 출근길 모습이 종종 생각납니다.
그리고 당당한 아버지의 출근길 발걸음이 너무 감사하고 그립습니다.


‘아부지~ 하늘에서 가족들 잘 지켜보고 계시죠?
작은 딸내미 요즘 다 늙어서 다시 글 쓴다고 맨땅에 헤딩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힘들긴 해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나름 뿌듯해요.
스스로 움츠려 들 때마다 아버지 생각하면서 힘낼게요.


저는 멋지고 당당한 아빠의 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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