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고 또 죽게도 한다는 그 '사랑'의 감정
"이모님, 제 이야기 들리세요?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는 자꾸만 가슴을 쳤다.
하지만 이내 마주한 것은
불과 몇 달새 비쩍 말라버린 몸과
초점을 잃은 텅 빈 눈동자.
할머니는 자꾸 먼 곳만 내다보았다.
'그냥 내버려두어라. 알잖니, 그 마음.'
늦은 저녁 가족만 남은 고요한 장례식장.
충혈된 눈으로 올려다본
영정 속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이해할 수 있다는 얼굴로
당신의 여동생을 바라보는 듯했다.
....
남편과 사별 후 혼자된 몸으로
아들 둘을 잘 키워 장가보내고,
두 아들 내외 모두 해외로 떠났을 때도
언제나 밝은 얼굴로 수다 꽃을 피워내던-
하나뿐인 언니였던
우리 할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손수 밥을 지어
울며불며 한수저만 드시라, 애원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언니의 죽음마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
나는 그 모습이
낯설어 멀리서 몸을 떨었다.
잠시 마음을 나눈 어르신이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그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릴 정도로
가족의 죽음도 잊을 정도로
그렇게 '사랑' 이란 것을 하셨다는 말인가.
죽음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도
'사랑'은 찾아올 수도 있다?
무지했던 나를 깨우는 순간이었다.
....
지금까지 나도 '사랑' 해본 적 있다.
설레고,
기쁘고,
힘들고,
그러나 늘 거기까지 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음이 깊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기까지만 했다.
나에게 사랑은 살고 죽고의 문제는 아니었으니.
.....
시시콜콜 친구들의 연애사에
나는 무조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훈수를 두곤 한다.
어찌 됐든 후회 없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해서.
그러다
문득 나야말로?
역시 말로만?
이라는 생각이다.
아직도 병상에 계시다는
이모할머니의 소식을 접할 때는
그때가 떠오른다.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을 살리고 또 죽게도 한다는 그 '사랑'의 감정
언젠가 한 번은
나도 그런 '사랑'을 하게 되나.
...
아니, 나는
그런 '사랑' 하게 될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