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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이 Oct 17. 2017

나, 길냥이의 탄생

비가 오는 날이면

 길냥이로 태어난 나는 이름이 없다.   

   

 다만 삼 남매 중 두 번째로 태어났기에 어머니는 나를 '둘째'라 부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도심 속 어느 한적한 주택가.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곳에는 곳곳에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넘쳐난다.      

 

 쓰레기 속 음식물, 캔에 붙은 찌꺼기와 상한 우유 등이 우리가 먹는 것들이다. 그리 풍부하지는 않지만 인적이 드물고 주택가 바로 뒤는 나지막한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우리와 같은 많은 길냥이들이 길을 헤매다 잠시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삼 남매가 태어난 지는 이제 1년이 되었다. 네 식구가 살기에는 이곳만 한 곳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의심해 본 일은 없다. 특히 나는 이곳에서 한 번도 벗어난 일이 없다. 때로 먼 곳에서 떠나온 다른 길냥이들의 모험담을 귀동냥 삼아 바깥세상을 상상할 뿐이었다.      

 

 나의 하루는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숨어서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거나, 홀로 새끼를 돌보는 어머니를 도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소소함으로 채워져 왔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는 듯하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구나."          

 

 먹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기분 좋게 말했다. 시커먼 하늘과 타들어가는 듯한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여름날이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높은 습도 탓인지 짜증이 가득했다. 조용한 가운데 집 밖에 매달린 에어컨 실외기에서 내뿜는 뜨거운 공기,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우리 길냥이에게도 이 무더위를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 오늘은 꼭 비가 오기를 고대한다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은 것일까. 한 방울, 두 방울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비가 반가워 잠시 비를 맞으며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기뻐했다. 이내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져내렸다. 계단 밑 잠자리로 재빨리 숨어들어오니, 어머니가 계셨다.          

 

“그러니까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는데…….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을 가장 좋아한다. 비가 오면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하듯 우리 남매들이 태어났던 그 날의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뱃속에 새끼들을 품고 있는 탓일까. 유독 배가 고팠던 그 하루,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재래시장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한 생선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먹음직스러운 푸른 생선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껏 시장에 버려진 쓰레기만 먹어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무서워 한 번도 욕심을 내지 못하던 생선. 생선가게의 생선 찌꺼기라도 입에 넣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어머니는 연신 파리채를 휘둘러대는 주인의 눈을 피해 생선박스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아니, 이 고양이 새끼가 감히 어딜! 여보 저 고양이 좀 잡아봐요.”          


 그러나 곧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챈 주인아주머니는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쫓기 시작했다. 막다른 골목 끝가지 다다른 어머니는 결국 주인아저씨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히고 말았다. 어머니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던 주인아저씨는 놀랐다.          


“어, 근데 이 고양이 배를 보니 새끼를 가진 것 같네.”     


“아니, 그래서 뭐, 하마터면 생선들 다 망가질 뻔했는데 혼쭐을 내줘야지.”     


“그래도 새끼 밴 어미 고양이인데, 우리 놓아줍시다.”     


“가뜩이나 요즘 손님도 없고 장사도 안돼서 속상해 죽겠는데...”     


 어머니를 놓아주어야 하나 잠시 망설이자 주인아저씨의 손아귀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그 틈을 타 도망쳤다. 오래도록 삶의 터전으로 삼아 머물던 시장. 아버지를 만나고 새끼들을 가진 소중한 곳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떠난 후 홀로 굶주려온 그곳에 이제 어머니는 미련이 없었다. 시장을 벗어나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거센 빗줄기와 눈물에 시야는 흐려지고, 어머니는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한 주택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다. 잠시 비라도 피하기로 마음을 먹고 지친 몸을 달랬다.     

 

 빗줄기가 잦아든 그날 저녁, 반지하층에 위치한 어느 집 환풍기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올라왔다. 집에서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숨을 죽인 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프라이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장에서 보았던 것 같은 생선 한 마리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엄마, 밥 아직 멀었어?”     


“으휴 이것아, 엄마는 밥만 하는 사람이냐? 조금만 기다려봐”     


“빨리. 배고파요”

     

“오랜만에 생선을 구웠더니 냄새가 진동을 하네, 창문 좀 열어줘.”     


“어머, 깜짝이야! 웬 고양이가 여기를 기웃거리고 있어! ”          


 창밖에 비를 맞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소녀는 소리를 빽 지르며, 쾅 창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입맛을 다시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순간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새끼들의 움직임이 전과는 달랐다. 어머니는 이제 곧 새끼들이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것임을 예감했다.


 거센 빗줄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계단 밑으로 숨어들었고, 시멘트 바닥뿐인 그곳에서 홀로 나와 남매들을 낳았다.

 

 그날 태어난 고양이는 나와 첫째 오빠, 막내 이렇게 셋이었다. 어머니는 낳은 새끼들의 온몸을 핥고 또 핥았다.


 새끼들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어미의 젖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모습.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품 안의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어머니는 지쳐갔지만 그 정성 탓일까. 우리는 모두 무사했다.

 

 비가 오던 날. 그렇게 나의 길냥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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