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은이 Oct 19. 2017

시간이 좀 필요해

아직은 겁쟁이라

 잠시만 이 곳에 머무르려던 어머니의 계획과는 달리 새끼들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해진 어머니는 주택가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 머물며, 우리를 먹이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다 탈이 나기도 했지만 자라나는 새끼들을 돌보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사명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원래 고양이들이 많은 곳이기는 했지만 늘어난 고양이 수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계단 밑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우리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서리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청소를 한다며, 살던 곳을 다 뒤엎기도 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머무는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버리다 우리를 만나면 고함을 치며 쫓기는 일은 다반사였다.      

 

 장난스러운 아이들은 우리들을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돌을 던지고 괴롭히기도 했다. 속수무책으로 사람에게 당하고 있을 때, 그때마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위협적으로 야옹거리며 사람들에게 짐짓 무서운 눈빛을 보냈다. 또 당황해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들의 엉덩이를 머리로 밀며, 사람들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향하게 했다.


 반복되는 쫓김과 도망, 이 생활에 적응해 가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갔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 어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나와는 달리 오빠와 막내는 매사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주택가 계단 밑에 사는 것, 쓰레기를 뒤지며 사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그들은 입버릇처럼 이곳을 곧 떠날 것이라 이야기했다.           


"둘째야, 우리 학교에 놀러 가자. "     


“그래, 누나 거기 우리 친구들이 많아.”     


“나는 싫어. 둘이 다녀와."     


"에휴, 겁쟁이 자식. 냄새만 나는 이곳에만 있는 것 답답하지도 않냐? "     


“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해.”          


 최근에 탐험하는 곳은 이 곳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진 한 대학교라고 했다. 종종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먹을 것도 주며 돌보아 준 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막내는 사람들이 목에 걸어준 손수건을 자랑처럼 달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무섭지도 않으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이곳과는 다른 경험들이 즐겁다고 했다. 여기저기 떠돌이 고양이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무료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고도.


 그곳이 점점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오빠와 막내는 하루, 이틀, 집으로 귀가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점차 품 안을 벗어나는 새끼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일 테지만 이내 담담한 모습이었다.


“어머니, 오늘도 오빠랑 막내는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에요.”     


“그래? 놔두어라, 돌아올 때가 되면 오겠지.”     


“오늘은 좀 쉬세요. 어머니, 제가 먹을 것 좀 찾아올게요.”     


“좀 쉬고 싶구나. 요새 입맛도 별로 없단다. 둘째 너도 오늘 이 어미 보살피느라 고생했을 텐데 어서 쉬어라.”          


 최근 들어 부쩍 쇠약해진 어머니는 멍하게 누워 쉬는 날이 많아졌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기운이 나는 시간은 옛날이야기를 할 때였다.

          

“어머니, 그러지 말고 오늘은 아버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너희 아버지?”     


“네, 저번에 어머니가 아버지께 첫눈에 반한 이야기까지 해주셨잖아요.”     


"그랬지, 너희 아버지처럼 늠름한 고양이를 이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단다."          


 어머니가 살던 재래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아버지. 아버지는 시장 토박이로 늘 혼자 지내는 어머니께 먼저 다가왔다. 관심을 표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도 한눈에 반했지만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수줍어만 했다. 그 마음을 눈치챈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바다와 재래시장까지 오게 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그렇게 가까워졌다. 곧 어머니는 새끼들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 몸이 무거워진 어머니를 대신해 음식을 구해주었고, 무료한 어머니에게 장난을 치며 기분을 달래주기도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난생처음으로 자신들에게 식구들이 생긴다는 설렘으로 하루하루 행복했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그날도 아버지는 새끼들을 가진 어머니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다며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붙잡혀 갔다는 이야기, 어머니를 두고 도망갔다는 이야기, 주변 고양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다른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며, 아버지가 곧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흘렀고, 홀로 남은 어머니의 배는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어머니는 홀로 우리 남매를 낳게 된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지금 우리 식구들과 함께였다면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머니의 이야기 속 아버지는 어머니와 뱃속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며 언제나 자신 만만한 당당한 모습이었다.      

 

 막연한 그리움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 어쩐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바다에서 태어났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결국 그 바다로 다시 떠난 것일까.


 바다에는 내가 사는 이곳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그 바다 또한 궁금해졌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오빠와 막내를 붙잡고 어머니가 해준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처럼 아버지의 이야기를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빠와 막내는 그런 아버지가 무책임하다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약 아버지였다면 약한 어머니와 곧 태어날 새끼들을 두고 떠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이다.     

 

 "바다라니 퍽이나 감상적이네. 그냥 우리를 버린 거야. 우린 버려진 거라고!"


  막내는 오빠와 나의 계속되는 대화에 어머니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실지 모른다며 조용히 싸움을 말렸다. 그러나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조용히 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버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가 지긋지긋하다고!”          


  그렇게 맞이한 늦은 아침. 눈을 떠보니, 오빠와 막내는 사라져 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이 우리 곁, 이 집을 영영 떠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 01화 나, 길냥이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