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 wiedersehen!
1.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나의 첫 포트폴리오는 밤에 관한 것이었다. 학원에서 여러 기법을 실습하다가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을 배웠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는 것은 그 사진을 통해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2. 그 겨울 매일 자정쯤이 되면 카메라와 삼각대, 핫팩과 렌턴을 들고 집을 나섰다. 금세 발을 얼게 하는 추위였지만 핫팩은 카메라 배터리를 위한 것이었다. 짧으면 2분, 길면 30분까지 셔터를 열어줘야 했던 촬영. 가장 익숙한 삶의 공간이 고요해진 그 낯섦이 좋았다.
3. 나는 여전히 그 고요함을 좋아한다. 그 고요함을 비추는 인공조명의 색을 좋아하고, 그 색이 비춘 어렴풋한 사물의 형태를 지나치지 못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어느 정도는 삼각대 없이도 야간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깥만큼 내 공간의 밤을 주시하게 됐다.
4. 깊은 밤 가끔 카메라를 들고 집 안을 서성일 때가 있다. 오후 3시면 이미 해질 준비를 하는 독일의 겨울은 끝없는 고요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셔터가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상이 입력되고 처리돼 액정에 나타날 때까지의 가벼운 시간의 간극에는 어둠이 뚝뚝 묻어난다.
5. 그 밤들의 사진에는 감정이 없다. 첫 포트폴리오에 감정을 실어보려고 노력했다면, 그 이후의 사진들엔 그저 밤이 나타나 있다. 사라진 자연광과 그 빈 곳을 메우는 조악하고 작은 인공광들. 어둠에도 빛에도 감정을 두지 못했다. 사진 속에는 늘 있었겠지만 지나가거나 집중하지 않았던 그 밤들이 있을 뿐이다.
6. 밤들의 계절이 지나고 빛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독일은 곧 저녁 10시가 돼야 고요함을 맞는 여름이 될 것이다. 공기의 냄새가 다르듯 그 밤들은 지난 겨울밤과 다른 색으로 남을까. 아니면 내가 바라보는 밤의 풍경이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