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의 작은 틈
'사진을 배운 사람이면 매뉴얼 모드 촬영에 익숙해져야지'
대학교 2학년, 조명 실습수업에서 들었던 말이다.
10년 전만 해도 디지털카메라의 기능은 신뢰받지 못했으니 그 발언도 이해가 간다.
또 전문가라면 당연히 훈련으로 다져진 감각으로 보다 보기 좋은 사진을 만들어야 한다는 장인 정신도 스며든 말이었을 것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의 발언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간단한 설정만 한다면 나의 카메라는 자동 모드에서도 대체로 만족할만한 사진을 보여준다.
플래시를 연결하면 셔터 속도는 자동으로 제한을 걸어주고, 동영상 촬영에서도 지정한 얼굴을 잘 따라가므로 손가락은 긴 휴식을 즐긴다.
게다가 어두운 밤하늘을 촬영하지도 않고, 눈을 스쳐가는 속도의 무엇을 촬영하지도 않는 이에게
자동 노출과 자동 초점 기능은 생각보다 많이 편리하고, 불완전한 나의 감각보다 완전하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고, 기계적 성능과 관계없이 소프트웨어가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이토록 완전한 카메라에서 불완전함을 끌어내기 시작한 작은 출발점은 실수였다.
가방에서 이동하는 동안 플래시 자동 발광 모드로 변경되고, 불필요한 플래시는 이미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엉망이 된 이미지는 묘한 재미를 안겨줬는데,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기능에서 불완전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특히 그랬다.
기계가 기술적으로 완성도를 높여놨지만, 상상할 수 없는 우연과 이를 다루는 인간의 불완전함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어서 고장, 오작동의 가능성까지 추가된다면, 내가 알던 완벽한 카메라는 없어진다.
SNS에서 완벽함을 뽐내는 사진을 보다 보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분명 그 이미지는 그 사람의 고유한 것임에도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든다.
예전 사진 기초 서적에서 봤던 3 분할, 황금 분할, 인물 촬영에서의 심도 활용법의 챕터에서 봤던 예시 사진처럼.
말끔하고 완벽한 구도, 심도의 이미지들. 그런 사진으로 둘러싼 삶에서 돌연변이가 생기길 바랐다.
엉망인 사진, 불완전한 손끝이 만든 완벽의 작은 틈. 그런 이미지가 하나쯤은 있길 바랐다.
그럼에도 긴 시간 체득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스마트폰보다 조악한 화질의 카메라를 사용하고
기능이라곤 플래시 정도뿐인 단순한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불완전함을 누리기 시작했다.
기능 많은 카메라에서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모드를 활용하면서 스스로 기초를 부수었다.
불완전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다. 방식을 달리하며 보기 좋은 이미지를 포기하고 있다.
사진에 다가갈수록, 그 본질에 들어갈수록 스스로 뒷걸음질을 치고, 개념을 뒤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러한 행위를 지속하며 행위의 근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