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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Nov 27. 2015

To. 친절했던 유령들

(Feat. 어라 혼자가 아니었네)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나는

책이 나오는 날이면

스르륵 책을 넘겨보며 스스로를 위안할 때가 많았다.

'누구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 이번에도 너무 힘들었다'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언제나 고민을 홀로 떠안고 있는 것 같았고

늘 혼자 남아 타닥타닥 타자를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더 외롭게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혼자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떨군 채 걷는 날이 늘어갔다.


여행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어떤 무리에 속하길 거부했던 탓이고, 누구에게 나를 드러내기 싫었던 습관 탓일지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았겠지.


베네치아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하는 길에서

인터넷도 끊기고, 어둑해져 정류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은 없었고, 있더라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떠나는 사람 뿐이었다.


"Excuse me, can i help you?"

짐을 이고지고 고개를 떨군 내 앞에  한 사람이 다가왔다.


사정을 들은 그녀는 정류장을 함께 찾아줬고, 내 휴대폰으로 티켓을 끊어줬다.

그리고 내가 버스를 타기까지 함께 기다려줬고, 잘가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Where will you go?"

버스 안에서 어디에 내려야할지 허둥지둥거리는 내게 한 커플이 말을 걸었다.

그들은 공항까지 간다고 했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정류장에서 내렸다.

탑승동은 저쪽이라 안내해줬고 그들은 홀연히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그날 베네치아 공항에서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다.

1시간 무렵이 지나자 무료 인터넷이 끊겼고, 노트북은 방전을 알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드문드문 줄어들더니

트레비소 공항에는 이내 깊은 밤이 찾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던 그날 밤,

잊고 지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햇병아리 시절 10개월을 돌봐준 선배들

1년 4개월을 함께 고생한 후배들, 동료들

4달 간 스터디와 수업을 함께한 사람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주던 엄마와 늘 차로 역까지 데려다주던 아빠

내 곁에서 위로가 됐던 소중한 한 사람


서툰 일본어에도 영어에도 매일 밤 저녁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도쿄 호스텔 사람들과

늘 미소로 반겨주고, 금세 친구가 되곤 했던 크로아티아 사람들

맥주 한 잔만으로도 완벽했던 런던 호스텔 식구들

이탈리아에서 다시 만난 런던 인연과

일을 떠나 진짜 친구가 돼버린 대학 동기

피렌체에서 와인을 나누며 야경을 바라보던 민박집 사람들

베네치아에서 내게 다가온 친절한 인연들까지


혼자라고 고개를 떨구며 살았던 내 곁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게 외로웠고, 그래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떠나온 길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보니 난 단 한번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지 않았었다.

아니, 나 혼자서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일도, 삶도, 여행도 같았다.

혼자라고 생각한 것은 내 시선이 나의 발끝만을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일 수 없었다.


늘 함께했지만 내 눈에 가려진 외로움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던 친절한 유령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은 친절한 사람으로 변해있었고

외로움은 조금씩 사그러들었다.


묵묵히 곁을 지켜준 친절한 유령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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