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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ug 07. 2015

낯선 도시 도쿄에서의 하룻밤

(Feat. 노숙하기 참 좋았다더라)

유럽까지 향하는 긴 여행을 앞두고 도쿄에서 스탑오버를 신청했다. 2박 3일 같은 4박 5일. 그 첫날 밤은 나리타 공항의 의자에서 지새워야 했다. 벚꽃 축제는 일본의 손꼽히는 축제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떠난 4월 4일, 벚꽃이 만발해 많은 이들이 도쿄를 찾았을 것이다. 


앞으로 6개월의 계획도 세우지 않은 내가 도쿄에서 숙소를 미리미리 잡았을 리가 없다. 출국을 한 달 남겨두고 준비를 시작했을 때 이 한 몸 뉘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행히 일본어에 능하고 경험이 많은 친구 덕분에 3박을 해결할 수 있었으나 도착하는 하루는 노숙을 해야 했다.


노숙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 밟은 도시에서 일본어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있으려니 두려움이 커졌다. 각종 SNS와 괴담을 통해 들은 범죄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걱정도 잠시였다. 2시간 동안 공항을 헤매고 나니 길이 훤해졌다. 덕분에 여러 상황을 고려해 가장 좋은 의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배고플 것을 고려해 음식도 넉넉히 사다뒀다. 오후 10시가 지나자. 공항 경찰들이 통제를 하기 시작했고, 공항을 맴돌던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나섰다. 자정을 넘기니 공항 내의 전등이 꺼졌다. 


의자의 한 자리씩 차지한 이들은 국적도 노숙을 하는 이유도 서로 달랐다. 마음 한편에 있는 의심과 걱정으로 우리는 함께 7시간을 보내면서도 대화 한 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공간을 누리며 보이지 않는 벽을 넘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 선을 지키고 있었다. 새벽이라 불릴 시간. 긴장한 몸들이 이완될 시간이다. 사람들은 꼭 쥐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기도, 사용하던 태블릿을 두고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야생에 놓인 듯했던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갖게된 것일까. 적어도 내겐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도감도 믿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도 그랬을까


추위에 문득 잠을 깰 때면 가장 먼저 내 짐을 살피고, 내 양 옆에 있는 이들의 짐을 살폈다. 뒤척이는 그들도 그랬을까. 알 수 없으나 그들도 그랬으리라 작은 소망을 품는다.


나리타 국제 공항 한 켠에 놓인 몸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애잔함은 곧 상대에게 적용됐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신은 곧 내게도 돌아왔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교감들. 누군가의 목소리와 뒤척임에 내가 움직였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으리라.  


낯선 도시에서의 첫 날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따뜻했다. 그날 밤의 경험으로 나는 학습된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았다. 의심과 믿음, 우연히 한 공간에서 밤을 함께 지새우던 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을 양가 감정들이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적절한 의심과 믿음이 더 편안한 밤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이제는 얼굴도, 모습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들이 짊어진 짐들의 모습은 여전히 기억난다. 나와 같은 여행자일 수도 생활인일수도 있겠지만 그날 밤 나리타 공항에서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이때부터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자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소문을 맹신하지 말자 생각했던 것.


'그 날의 계획은 그 날에 짠다'는 제1원칙 이후 두 번째 원칙을 세운 것은 바로 여행 첫 날 나리타 공항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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