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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ug 11. 2015

꿈같은 도시에 산다는 것은

(Feat. 외로워 그냥 막 외로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Dubrovnik)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화폐를 쓰는 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지, 심지어 어디에 위치한 지도 몰랐다. 시작한 사업에 일손이 필요하단 친구 말에 일단 표를 끊었을 뿐. 4월 초순, 어깨에 얹힌 10킬로그램의 가방과 위태로운 바퀴의 캐리어. 어딘지도 모른 채 크로아티아의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섰다.


종종 TV에서 친선 축구 경기를 통해 보던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선 나라. 쿠나(Kuna)라는 화폐를 사용하고 크로아티아어로 대화하며, 이탈리아와 세르비아와 가깝다는 것은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파악했다. 그리고 '꽃보다 누나'의 배경이 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오고 있다는 사실까지. 


두 달, 내가 머무를 기간이었다.

며칠 간의 인수인계 후, 성벽 내의 6인실 호스텔에 홀로 남겨졌다. 여전히 무거운 10킬로그램의 가방과 곧 고장이 날 것 같은 캐리어와 함께 나는 낯선 관광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일주일은 아름다웠다. 한국에선 쉬이 볼 수 없던 바다의 낙조를 매일 볼 수 있었고, 여행객들로 가득한 도시는 늘 축제 분위기였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호스텔의 매일 밤은 술과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이 모든 것은 누구나 짧게 머무르는 곳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여행객들 사이에서 두브로브니크는 하루 혹은 이틀을 머무는 도시다. 부지런하다면 하루면 충분할 수 있는 그런 곳.


덕분에 새로 들어오는 룸메이트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눈 후, 다음 날 오전이면 작별해야 했다. 6인실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26명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떠나 보냈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낀 것은.

하루, 이틀은 너무 아쉬워. 오래 머무는 네가 부럽다

라고 말하는 룸메이트들에게 나는 그저 그들이 공감하지 못할 쓴웃음만 보냈다. 아름다웠다. 오늘이 그렇듯 내일도 그럴 것이며, 내일이 그렇듯 모레도 그럴 것이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흥겨운 음악도, 피에로 분장을 하고 동전을 얻는 사람들도, 레스토랑의 호객꾼들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이 비슷하거나 같았다. 풍경 속의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기에 바빴고, 삼삼오오 모인 단체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을 담기에 바빴다. 아침이면 밀물처럼 밀려오는 관광객으로 붐볐고, 해가 질 무렵이면 썰물처럼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곳에서 관계 맺기를 포기했다. 그게 외로움의 시작이었다. 모두 속에 있지만 모두가 될 수 없었다. 짐을 들고 떠날 다음이라는 장소가 없었다. 하지만 매일의 숙박비를 결제하는 나는 그곳의 진짜 거주자도 될 수 없었다. 그저 내 손에 남은 것은 삐걱이는 2층 침대의 아래칸과 매일 성공적으로 마쳐야만 하는 촬영 일정 그리고 한국과 나를 이어주던 카톡이라는 유일한  끈뿐이었다.

여행자와 거주자,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던 나는 작은 골목을 찾아 다녔다. 여행자의 발길도, 거주자의 일상도 닿지 않는 곳을 찾고 싶었다. 공허함을 메꿔줄 공허한 공간을 원했다. 발품을 팔던 내가 찾은 곳은 단 한 곳이었다. 바로 오후 12시의 호스텔 6인실 방 안. 모두가 떠난 시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시공간. 두브로브니크에서 내 존재는 그와 닮아 있었다. 


그토록 꿈꾸던 혼자 여행이었다. 필요한 만큼 돈도 벌 수 있었고, 그 어떤 도시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며, 사람들은 늘 친절했다. 흥겨운 음악과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했던 항구 도시. 그럼에도 나는 외롭고 외로웠다. 외로움 속에서 내가 떠나온 이유를 집요하게 찾기 시작했다.  끝없이 글을 쓰고 지웠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된 후 처음 느낀 막연한 외로움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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