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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Jan 01. 2016

이 몸 하나 뉘일 곳은 어디에

(Feat. 225호에서의 기억)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으로

프랑크푸르트 한에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으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베를린으로


14시간을 거쳐 도착한 베를린은 6월 초였음에도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가장 먼저 버스 터미널 근처 저렴한 호스텔에 일주일을 묵기로 했다.

3개월 지낼 방을 구해야 했고, 당분간 다닐 학원과 일자리도 알아봐야 했다.


작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도착한 Happy go lucky 호스텔 225호.

이곳은 저렴한 탓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우르르 찾았다, 우르르 떠나는 곳이었다.

덕분에 매일 밤 10대의 열정 어린 소음을 견뎌야 했던 곳.


225호는 이 소란 가운데 유일하게 특별한 곳이었다.

나와 비슷한 혹은 같은 목적으로 지내고 있는 이들이 이미 5명이나 있었기에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지 않았고, 늦은 저녁에도 민감하지 않았다.

225호가 집인양 이들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이 중에 나는 유일한 여자였다.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유일하게 독일어와 영어 모두 부족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어색한 3일을 지나

문득 각자가 지닌 상황을 나누며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지기 시작했다.


모닝커피를 함께 했고, 장을 보기도 했다. 저녁이면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함께 영화를 보고

지난 여행을 나눴으며, 앞으로의 계획과 같은 진지한 이야길 하다가도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인종도, 모국도, 언어도 달랐지만 우리는 225호에 머물고 있었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고, 숨겼지만 모두의 마음 한 켠에는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몸 하나 뉘일 곳은 대체 어디에


매일 사이트에서 방을 뒤지며 우리가 공통으로 해왔던 생각이다.

실내 디자이너와 사진을 하는 나, 지질학자인 우리 셋은 유난히 더욱 친했고

사업이라도 하자며 시끄러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이대로 살아도 행복할 것 같던 시간은 금세 흘렀지만 지낼 방도 다닐 학원도,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다.


그렇게 1주일 연장된 호스텔 생활.

그날 밤 실내 디자이너는 일거리와 방을 구했다며 저녁을 샀고, 내 메일에는 드디어 기다리던 방주인의 답변이 왔다. 지질학자는 터키까지 차로 여행하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우리의 디데이는 5일 뒤였다.


디데이가  오기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길 나눴다.

매일 밤, 불을 끄고도 도란도란 참 많은 말을 했다.

더듬더듬 부정확한 표현에도 나를 이해하려 그들을 귀를 기울였고,

나 역시 빠르고 복잡한 표현을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사전을 뒤적였다.


그간 느껴본 적 없던 유대감이었다.

모두가 잠시 스쳐가는 정류장 같던 호스텔이 집처럼 느껴졌던 것은

한 없이 낯선 세상의 사람들처럼 느껴지던 외국인이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 것은

그곳에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2주간의 225호 생활은 더 없이 행복했으나

모든 행복에 끝이 있듯, 우리에게도 약속의 시간은 찾아왔다.

속절없이 다가온 그날에 

불현듯 이어진 인연은 어김없이 각자의 길로 다시 흩어졌다.


즐겨먹던 케이크와 차 한잔, 전날 줬던 작은 엽서에 대한 답장.

눈을 뜬 내 앞에 남겨진 마지막 선물이었다.

몸을 에우는 짐을 짊어지고 마지막으로 나 역시 그곳을 떠났다.

이 몸 하나를 뉘일 장소를 향해 또 나의 20살을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도시를 향해.


아침마다 함께한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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