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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pr 29. 2016

빛, 정면으로 마주하기

역광 이야기

Berlin, 2015, Fujifilm X30

촬영할 때 가장 좋아하는 빛이 있다면 바로 역광이다.

셔터 찬스가 좋다면 어떤 빛보다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다.

반면, 익숙하지 않다면 후보정으로도 살리기 어려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아직 햇병아리 수준이지만) 역광 촬영하며 얻은 몇 가지 팁을 공유하려 한다.


역광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조명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다.

본격적으로 조명을 배우기 전, 자연광에서 피사체 하나로 순광, 사광, 반사광, 역광을 테스트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리고 친구 하나를 세워두고 빛이 보일 때마다 촬영하며 혼자서 빛을 익혀나갔다.

천안, 2010, Canon EOS 7D

이 사진이 테스트 중 한 장이다.

렌즈 코팅이나 구성, 배열이 좋지 못해 생길 수 있는 플레어와 고스트.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역광 사진의 길로 이끌었다.

광장시장, 2011, Canon EOS 7D

역광이 만드는 뿌연 화상. 디지털 사진 특유의 쨍한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빛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빛없는 피사체가 사진에 무의미하듯 피사체 없는 빛 역시 어떤 의미도 없었다.


천안, 2011, Canon EOS 7D

저널리즘 수업 과제 중 촬영한 아이 사진은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과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정을 자각하게 했다. 단순히 역광 사진을 잘 찍고 싶은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1. 역광은 태양이 낮을 때 쉬워진다
Bochum, 2015, Fujifilm X30

해가 질 때쯤 촬영한 역광 사진이다. 강한 빛을 제어해줄 피사체가 마땅치 않아 노출 차이가 심하지만 그 나름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Bochum, 2015, Fujifilm X30

역시 해가 낮지만 완전한 역광 상태는 아니다. 사광과 역광 사이 정도의 위치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빛에 반짝이는 물과 꽃이 아름답게 느껴져 촬영했다. 완전한 역광 상태가 아니라면 적정 노출을 확보하기도 좋다. 그래도 역시 노출을 플러스 보정이 필요하다. 


2. 피사체 활용하기
Paris, 2015, Fujifilm X30

해가 높게 뜬 상태에서의 역광도 가능하다. 다만 빛이 강해 제대로 된 촬영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땐 주변 사물을 활용해야 한다. 울창한 나무로 빛을 살짝 가리 돼 역광의 느낌은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한 빛이 전체 조도를 확 높이기 때문에 적정 노출로 촬영하면 자칫 어둡게 느껴질 수 있으니 1 스탑 정도 플러스 보정하고 후보정으로 암부를 끌어올려 주는 것이 좋다. 

Paris, 2015, Fujifilm X30

빛이 강할 때는 실내에서 촬영해도 역광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야외 촬영과 달리 셔터 속도를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워 조리개를 개방했더니 뿌옇게 화이트 홀이 발생했다. 화이트 홀은 노출이 오버되다 못해 아예 노출값이 0으로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상업 촬영이라면 당연히 지양해야 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 선호하는 종류의 현상이다. 


3. 로우 앵글에서의 역광
Paris, 2015, Fujifilm X30

파리 여행 중 유난히 스냅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빛이 좋았던 터라 의외의 역광 사진도 많이 촬영됐다. 한낮의 빛이라 아이 레벨에서 역광 촬영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이때 촬영하던 콤팩트 카메라 X30은 LCD가 틸트 되는 방식이라 로우 앵글 촬영이 가능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낮게 두고 위를 향하는 방식으로 스냅사진을 촬영했더니 색다른 역광 스냅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Paris, 2015, Fujifilm X30

카메라로 시선을 낮추면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Paris, 2015, Fujifilm X30

강렬한 빛으로 두 사람의 얼굴은 거의 날아갔지만 낯선 구도,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피사체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특별히 이렇게 촬영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계속 촬영하며 걷다 보니 얻어걸렸다. 스냅사진은 운빨도 한몫한다. 

Paris, 2015, Fujifilm X30

해가 낮아지는 시간대에 촬영한 역광 스냅사진이다. 앞서 길을 건너는 커플 사이로 빛이 들어와 촬영했다. 운빨이라고는 해도 약간의 계산은 필요하다. 그리고 여러 장 찍는 집요함도. 이런 모든 사진은 커플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솔로 여행 만쉐!)


4. 마구 찍어보자
Paris, 2015, Fujifilm X30

파리 개선문에서 역광으로 촬영한 전경 사진이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에 색온도가 낮은 상황. 덕분에 빛을 마주하자마자 강한 붉은빛이 돌았다. 암부와 명부 차이가 컸던지라 X30에 있는 HDR 모드로 촬영했다. HDR 모드는 언더 노출, 적정 노출, 오버 노출을 각각 촬영해 합성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잘 사용하면 별도의 편집 없이도 쓸만한 사진이 되지만 과하게 이용하면 사진이 아닌 그래픽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떤 기법이든 만능은 없으니 테스트, 테스트가 답이다. 

Split, 2015, Fujifilm X30

일반 저인 역광은 아니다. (바닥에서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올 확률이 몇이나 될까)

기타 치는 할아버지가 내놓은 어떤 사물에 햇빛이 반사됐고, 그 사이를 우연히 다른 할아버지가 지나갔다. 두 할아버지의 완벽한 콜라보레이션 덕분에 작지만 빛나는 역광 사진을 얻었다. 사실 역광 빛이 없어도 한 량 한 량 한 느낌이 풍기는 이미지이긴 했다. 

Berlin, 2015, Fujifilm X30

맨 처음 사진을 찍은 곳이다. 이날 빛이 좋아 꼭 제대로 된 역광 사진을 촬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횡단보도만 4번을 건넜다. 그러자 해가 져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그래도 여러 번 촬영하면서 사람이 가득한 풍경도, 단 두 명에게 강하게 비치는 풍경도 모두 촬영할 수 있었다. 좋은 빛을 만났을 때 셔터를 아까워하지 말자. 사진을 찍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늘 보는 풍경 같아도 내가 지금 이 순간 마주하는 것은 한 번뿐일 수도 있다. 

Berlin, 2015, Fujifilm X30

이 사진 역시 HDR 모드로 촬영했다. S반에서 내려 공항으로 걸어가는 길인데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멋진 역광 느낌에 여러 컷을 촬영했다. 그리고? 짐 들고 미친 듯이 뛰었다. 



사진을 시작한 지 어언 9년째가 되지만 누군가 "사진은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사실해줄 말이 별로 없다. 내가 촬영한 사진도 완전한 답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사진도 완전한 답이 아니다. 또 사진은 1+1=2처럼 공식을 외워 정확한 답을 낼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사진 팁이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 장르가 있다면 팁을 익히고, 사진을 모방하며 자신이 잘 찍는 사진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방은 어디까지나 초기 단계라는 것이다. 


누군가 뻔한 풍경 사진에 '동어반복적인 이미지'라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특정한 촬영 장소에 몰려가 인터넷에서 본 똑같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동어반복'이다. 정말 그 사진을 소유하고 싶다면 한 컷 정도는 찍자. 그래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전혀 다른 사진을 촬영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글의 주제는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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