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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Jun 14. 2016

츤츤 오스트리아

( Feat. 무심한 듯, 친절한 사람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절실히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피부색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이곳을 넘어 동남아시아에서도 내 피부색이 '옐로'라는 것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난히 쌀쌀맞았던 런던에서의 경험과 거주하는 동양인이 신기했던 크로아티아에서 난 그야말로 '동양' 여자였다. 


시선과 행동으로 은근한 차별이 몸에 익을 때 즈음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 비엔나, 빈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이곳에서의 작은 목표 두 가지를 세웠다. 


가능한 많은 전시를 볼 것.

할슈타트(Hallstatt)에 무사히 다녀오기.


첫 번째 목표는 여행 자금과 체력을 고려한 안배가 중요했다. 가뜩이나 물가가 비싼 나라였기 때문에 식비와 차비는 최대한 줄이고, 저질 체력으로 3개월 간 여행 중인 것을 고려해 술을 멀리하고, 침대를 가까이해야 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오스트리아 여행이 고마움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츤츤'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연 덕분이다. 


첫 번째 츤츤녀는 뮤지엄이 모여있는 MuseumsQuartier에서 마주했다. 이곳에는 에곤 쉴레 작품으로 유명한 레오폴드(Leopold) 미술관과 현대 미술관 MUMOK, 쿤스트할레(Kunsthall)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오후에 방문해 통합권을 끊으려고 하니 쿤스트할레에 오늘 전시 오프닝이 (무료) 있으니 제외하고, 레오폴드와 현대 미술관만 끊는 것이 낫다고 별 감흥 없이 전하던 츤츤녀는 (돈을 아껴) 기뻐하는 나에게 오프닝 시간과 전시에 관한 간략한 소개까지 더해줬다. 덕분에 처음 가는 미술관을 처음이 아닌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츤츤녀는 비엔나 비엔날레 2015의 일환으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MAK에서 만났다. 입장권을 끊고 있을 때였다. 학생이냐, 학생증은 없냐는 직원의 물음에 없다고 답했더니 먼저 표를 끊은 츤츤녀가 와서 학생증을 내미는 것이다. 아니 괜찮다고 했더니 본인은 이미 다른 할인을 받았다며 이것으로 할인을 해주라는 것. 덕분에 할인된 가격으로 끊고, 학생증을 빌려준 츤츤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이내 사라져버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세 번째 츤츤남은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났다. 짐 보관이 어렵다는 호스텔 정책 때문에 모든 짐을 끌고 할슈타트 가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20kg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머리 위 짐칸으로 올려야 했다. 나름 힘에는 꿀리지 않는데 이것만은 무척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앉아있던 츤츤남이 벌떡 일어나 캐리어를 훅 들어 올려주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앉아버리는 것(..) 뭐가 지나갔나 싶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우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츤츤남은 먼저 내렸는데, 내리기 전 갑자기 또 벌떡 일어나 짐을 내려주고 본인은 내렸다(..) 유유히


네 번째 츤츤남 역시 기차에서, 다시 빈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똑같은 상황, 똑같은 분위기를 겪었다. 뭐랄까. 이쯤 되면 이게 교육으로 인한 무조건 반사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싶었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마칠 즈음, 웅장한 도시와 화려한 작품들, 멋진 풍경보다도 뇌리에 깊이 박힌 것은 무심한 듯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여러 번의 여행을 거치며 한 도시의 기억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의해 크게 좌우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이라는 나라가 좋았고, 크로아티아를 잊지 못하며, 이탈리아 남부에서 경험한 유쾌함을 되새긴다. 오스트리아는 츤츤의 매력으로 무심한 듯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타인에 대한 낯섦과 그럼에도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 아닌 의무감이 묘하게 조합된 듯한 모습은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여행자였을까. 나도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쉽게 말하지 않고, 도움을 받는 순간 낯설어하다가 이내 고맙다고 어색하지만 진심으로 말과 미소를 건네는 사람. 낯선 도시와 상황, 여러 악조건으로 지쳤던 내게 오스트리아에서의 츤츤한 친절은 많은 힘과 용기를 줬다. 


오스트리아까지 3개월의 긴 여행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입성했다.

역시 3개월뿐이지만 본격적인 생활을 위해. 비자에 찍힌 '워킹홀리'를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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