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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Jul 14. 2016

사백디와 일팔오오

첫 카메라의 기억

내 첫 디지털 카메라는 캐논 사백디였고, 렌즈는 번들 일팔오오였다. 입문용으로 출시된 DSLR과 번들 렌즈. 입학했을 때 많은 친구들이 오디와 이사칠공 렌즈 혹은 이십디와 이사칠공 렌즈를 샀던 것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 없는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집에선 유일한 디지털 카메라로, 내겐 첫 디지털 카메라로 나름의 최신 제품이자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간 필름 카메라만 사용했던 나로썬 필름 걱정 없이 마음껏 촬영할 수 있어 좋았다. 실수를 해도 괜찮았고, 엉망으로 촬영해도 괜찮았다. 내게 사백디와 일팔오오보다 자유로운 카메라는 없었다. 기능도 적당했다. 감도는 1600까지, 화소는 1000만 화소, 셔터스피드도 1/4000이 가장 빨랐다. 필름을 사용했던 내게 ISO 1600의 거친 느낌은 필름보다 덜했고, 조악한 스캐너로 확인한 화질보다 사백디 원본이 좋았다. 빠른 촬영보다 장노출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셔터스피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무살부터 스물두살까지 3년 동안 그 카메라로 과제를 했고, 작업을 했다. 이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이십대 초반 친구들과의 어린 추억도 담았다. 거기까지. 지금에 와서 기억하는 사백디와 일팔오오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오랫동안 클릭해보지 않았던 케케묵은 그 폴더를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전혀 다른 기록을 만났다. 스무살부터 스물두살까지 내가 세상을 크롭해왔던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 속 스무살부터 스물두살의 나는 세상을 좁게 잘라냈다. 세상과 사물의 극히 일부만을 도려내 기록으로 저장하고 있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환부였는지 혹은 가장 정상적인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은 것은 잘린 조각 뿐이다. 


시작도 끝도, 배경도 없이 잘린 세상의 조각은 서사도 의미도 잃은 채 낯선 이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리고 데이터로 남아 불안정한 하드를 떠돌아다녔다. 이제는 찍은 이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의미와 서사, 배경은 사실 더이상 종요하지 않다. 조각난 일부로서의 새로운 기능을 수년이 지나서 찾았으니까.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유명한 점쟁이를 만나 사주를 본 날이 있다. 그녀는 내게 "열아홉부터 스물하나, 스물두살 참 고생이 많았다"라며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끝없이 불안정하고 뒤틀렸던 생을 단 두마디만에 정리한 그녀. 나는 20장이 넘는 사진들로도 다 보여줄 수 없다. 내 사진은 하나 같이 중얼거리고 있다. 이렇게 힘들었노라. 한마디로 정리하지 못하고 소곤소곤 중얼중얼 완벽하지 않은 옹알이를 하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의 나도 알아볼 수 없었겠지.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눌렀지만 셀렉을 하는 섬세함은 찾아볼 수 없던 나이. 디지털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았던, 그래서 모든 사진을 잠상으로 남겨둔, 이제서야 제대로 현상해 실체를 발견한, 그렇게 찾은 사진. 모든 것이 지나가버려 증거도 실체도 확인할 수 없기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내 카메라에, 내 메모리 카드에, 내 하드에 저장된 수십만장의 사진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 중에는 '정말' 내가 촬영하지 않은 사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신 찍어준 그 누군가도 이 사진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은 그야말로 미아가 된다. 존재는 있지만 근본은 망각된 명증한 미아. 증거는 있는데 증거를 잡아낸 사람이 사라졌다. 그래서 세상의 조각은 남았는데 조각을 담은 전체는 없다. 사라진 서사를 읽어줄 증인이 없다. 

한 때는 세상에 빛을 터뜨렸다. 사진을 찍고 있음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목소리에 반항하듯, 윙거리는 렌즈 모터 소리와 조악한 미러 움직임 소리에 정면으로 가차 없이 발광하는 플래시를 사용했다. 플래시는 순간적으로 사람을 세상을 공격한다. 플래시가 닿은 표면은 어김없이 명확했다. 명확함. 이때 이후로는 사용해본 적 없는 폭력적인 관조였다. 


나는 자주 흔들렸다. 100장에 50장 꼴로 흔들린 사진이 많았다. 자꾸 흔들렸다. 셔터 스피드를 모르던 시기도 아닌데 많이 흔들렸다. 흔들린 사진에 대한 이유는 분명한데 그 이유에 대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와서 난 이 사진들이 가장 좋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나는 모른다. 그때처럼 내가 흔들리고 있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사진 조각들은 당시의 내가 분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시작도 끝도 모르는 시위, 그 가장 앞에서 사진 조각을 담았다. 분명한 명분은 있었으나 내막은 몰랐다. 자주 술을 함께 나누던 나이 많은 선배들은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분노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몰랐던 것 같다. 사진을 보면 그렇다. 나는 무엇이 중요한지 몰랐고,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분노했고, 그래서 그냥 사그라들었다. 우둔한 민중, 무지한 시민. 그 언저리에 스무살의 나를 두면 될 것이다. 나는 그 자리의 의미를 몰랐던 만큼, 셔터로 인해 어떤 사진이 담기는지 몰랐다.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던 사진 조각들이 내 앞에 던져졌다. 내 솜씨구나 싶은 정도의 못남, 웰던 정도의 나쁨, 별로였던 사진이 하드에서 푹 익어 완전히 나쁨 상태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나는, 이제, 무엇을, 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도 모르는 순간에 찍힌 사진 조각 속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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