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뒤셀도르퍼 Jul 13. 2016

워홀러의 추억_ 시작

(Feat. 그해 여름)

German, Deutschland, 독일.

이 나라를 지칭하는 여러 방식 중에서도 Deutschland가 가장 익숙한 것. 그 이유는 독일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기도 전에 덜컥 이 나라로 와버렸던 스무 살의 결정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에 겪은 6개월이 전부였던 나라. 그럼에도 자꾸만 추억하게 되는 그 나라에 나는 스물일곱에 다시 발을 디뎠다. 다시 6개월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워킹을 하겠다 혹은 홀리데이를 즐기겠다. 보통은 대책이나 계획을 세우건만 남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저 언제든 부족함이 없도록 중고 노트북과 중고 카메라, 렌즈를 구비해 출국했을 뿐. 내게는 그저 6개월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 기대뿐이었다. 운이 좋게도 친구로부터 2개월간 일을 받아 여행에 필요한 돈을 벌고, 독일에 정착하기 위한 한 달 정도의 생활비를 남길 수 있었다. 


늘 여행에서 고생만 했던 시간이 액땜이었는지 3개월간 지낼 집도 2주 만에 구할 수 있었다. 입주 전 남은 시간을 다시 한번 긴 여행으로 메꾸고 돌아와 드디어 독일 워홀러로 시작할 수 있었다. 



Berlin, Hallo wieder!


드레스덴에 거주할 당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베를린을 여행한 적이 있다. 높은 빌딩과 거리마다 가득한 사람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 분위기로 완연한 그곳. 차가운 공기마저 즐겁게 느껴지는 그런 곳. 자연스럽게 베를린의 여름을 꿈꿨지만 아쉽게도 봄의 찬 공기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여름, 베를린의 여름은 상상 속의, 꿈만 같은 시공간이었다. 어떤 느낌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그래서 여남은 봄을 일본과 크로아티아, 영국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보내고 완연한 여름 7월에 베를린 땅을 다시 밟았다. 

2008 Berlin, Tiergarten
2015, Berlin, Tiergarten

비가 끈질기게도 내리던 7월이었다. 이른 아침 창문을 비추던 햇빛도 어느새 먹구름에 밀리기 일쑤였다. 흔치 않은 햇빛 덕분에 맑은 날 빨래방은 언제나 만원. 한국에서 챙겨 온 반팔은 잠옷으로 입기에도 추웠다. 이미 5월부터 반팔을 찾곤 했던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달랐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세일하는 기미를 발견하면 긴팔, 긴바지를 사는 것에 집중했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연일 찜통이라는 한국에서의 보도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독일에서 여름을 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덥지 않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늘 여러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자주 비가 왔다. 그럼에도 습하진 않았고, 여름에 왔음에도 나는 종종 난방을 해야 했다.


차가운 여름, 나는 두 해 전 처음으로 낯선 도시 홋카이도에서 남다른 4박 5일을 보냈다. 반팔보다 가벼운 긴팔이 적당히 딱 좋았던 그 시간과 공기를 추억하게 했던 베를린의 7월. 더불어 주변인들이 입이 마르도록 시원하다고 칭찬했던 유럽의 여름이 이러한 서늘함이었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19도에서 23, 24도를 오르내리는 이 온도를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가 오는 19도는 서늘했고, 맑은 날 아침의 19도는 시원했다. 빗방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23도와 에어컨 없이 학생으로 들어찬 교실의 24도는 답답했다. 


학원을 오가는 동안 머리를 가득 메우는 회색빛 구름과 한 방울 톡 하는 것 같다가도 쏟아지는 비, 비가 오기 전 방 안으로 들어오는 벌레, 눅눅함 속에서 이틀이 넘도록 마르지 않던 빨래. 그래서인지 베를린에서 보낸 7월 초의 기억은 습하게 남아있다. 


베를린의 여름. 그 환상이 현실로 들어왔다. 아니 환상이라고 믿는 현실에 내가 발을 내디뎠다. 내 손에 얼마 남지 않은 환상. 그중 하나가 색색으로 칠해진 환상에서 정보 나열로 이뤄진 현실 공간이 됐다. 딛고 있는 땅이 환상의 세계가 아니니 현실로 인식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로 마주한 7월의 베를린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베를린의 진짜 여름을 아직 만나지 못했었다. 



(주절주절)

언제나 부족한 글재주 덕분에, 게으름 덕분에 고작 6개월짜리 여행을 1년이 넘도록 붙잡고 있다. 사실 한 번에 풀어도 문제없을 이 여행을 이토록 길게 끌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언어로 쉽사리 그 시간을 정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억이란 그런 것 같다. 내 머릿속에만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이때는 이랬어요'라고 밝히는 순간.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은 그렇게 굳고,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말과 글의 마법. 난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자꾸만 말하기를, 밝히기를 미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지우기 전, 다시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