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진은 찰나로 이뤄진다
순간으로서의 사진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사진은 시공간을 갖고 있으며, 특정한 셔터 속도와 특정 조리개로 촬영되기에 모든 사진은 순간이다. 물론 짧게는 30초부터 길게는 몇 시간을 촬영할 수도 있다. 드물게는 한 컷에 몇 년을 쏟는 경우도 있다.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사진에는 순간이 담겨있다.
순간을 말하는 극단적인 예는 바로 이런 사진이다. 이 사진은 1/1000초 혹은 1/2000초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촬영됐다. 하지만 1/1000초로 이런 사진만 찍을까. 그렇지 않다. 아래 사진은 같은 셔터 속도로 촬영된 사진이다. 이 사진도 순간을 담은 사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두 사진은 모두 찰나를 담은 사진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달리는 말을 촬영한 사진은 1/1000초를 극적으로 사용한 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그저 우연히 빛이 좋아 1/1000초로 세팅돼 촬영된 예다. 이 두 사진을 모두 순간의 사진이지만 첫 번째 사진은 카메라의 순간, 두 번째는 시공간의 순간이다. 카메라의 성능으로 끌어낸 첫 번째 순간은 경마장에선 누구나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이다. 우리가 소지한 스마트폰으로도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순간은 이 모든 상황이 이뤄진 순간 그것을 발견한 사람만 촬영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것을 기계적 찰나의 사진, 사진적 찰나의 사진이라 스스로 분류하곤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내가 즐기는 것은 바로 두 번째 사진이다. 기계적 찰나의 사진은 카메라라는 장치를 학습하고, 촬영 방법을 습득했다면 촬영할 수 있다. 반면 사진적 찰나의 사진은 기민한 시선을 요구한다. 더불어 특별한 시공간을 만날 수 있는 운도 필요하다.
이렇게 양자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면 사진적 찰나의 사진에 대해 궁금함이 생길 수 있다. 사진적 찰나의 사진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담는 비일상이자, 찰나에 담겼지만 정적일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 표면에 붙은 대상의 몸짓보다 표면에 감춰진 누군가의 의도에 궁금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리고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사진이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사실 낯선 곳에서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짧은 여행을 할 경우엔 익숙해질 때까지 카메라 없이 많이 걷는다. 긴 여행을 할 때는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야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진으로 일상을 비일상으로 바꾸는 마법은 이러한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낯선 풍경에서는 무엇이든지 피사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시공간을 신경 쓰고, 순간을 잡으려는 노력이 사라진다.
익숙한 서울에서, 익숙한 동네에서, 익숙한 풍경에서 낯섦을 발견했을 때. 사진은 내 것이 되고, 그 풍경 역시 나만의 것이 된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바꾸는 찰나는 익숙함에서 시작한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거리가 있다면 한 번쯤 카메라를 들고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많은 찰나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적인 찰나
찰나를 촬영한 사진이 언제나 역동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카메라적 찰나가 아닌 사진적 찰나이기 때문이다. 무척 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그 시간, 그 공간을 잡아낸 순간의 사진이다.
찰나, 순간에 대한 개념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을 때는 촬영하고 싶을 때 여러 이유를 대며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지나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음에 찍지 뭐'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음은 없었다. 문득 다음이 없음을 깨닫고선 언제나 준비 중이다.
질문을 만드는 찰나의 사진
사진은 가장 명료할 수 있는 시각 매체이지만 어떤 순간은, 어떤 사진은 가장 모호하게 다가온다. '왜 이 사진을 찍었을까', '왜 이 사진을 선택했을까'. 순간을 담은 사진은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끌어당긴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사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놓친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진은 어떤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었을까. 사진적 찰나는 흐름과 변화가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 지나치는 거리에서도 우린 매번 다른 사람들을 지나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사는 듯 보여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사진적 찰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묘함은 더 이상 마주칠 수 없는 시공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무언가 그 시간,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사진은 보여준다.
가장 밀접한 공간에서, 가장 익숙한 시간에서 낯선 순간을 찾아내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의 몫이다. 먼 곳에 가지 않아도, 명소에 가지 않아도 나만 볼 수 있는, 나만 담을 수 있는 순간은 많다. 부산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는 대신 동네를 여러 바퀴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모델에 카메라를 돌리기 전에 매일 마주치는 가족의 모습을 파인더로 바라봐도 좋다. 사진적 찰나를 찾을 때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익숙함은 낯섦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