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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ug 23. 2016

순간으로서의 사진

모든 사진은 찰나로 이뤄진다

순간으로서의 사진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사진은 시공간을 갖고 있으며, 특정한 셔터 속도와 특정 조리개로 촬영되기에 모든 사진은 순간이다. 물론 짧게는 30초부터 길게는 몇 시간을 촬영할 수도 있다. 드물게는 한 컷에 몇 년을 쏟는 경우도 있다.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사진에는 순간이 담겨있다. 


순간을 말하는 극단적인 예는 바로 이런 사진이다. 이 사진은 1/1000초 혹은 1/2000초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촬영됐다. 하지만 1/1000초로 이런 사진만 찍을까. 그렇지 않다. 아래 사진은 같은 셔터 속도로 촬영된 사진이다. 이 사진도 순간을 담은 사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두 사진은 모두 찰나를 담은 사진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달리는 말을 촬영한 사진은 1/1000초를 극적으로 사용한 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그저 우연히 빛이 좋아 1/1000초로 세팅돼 촬영된 예다. 이 두 사진을 모두 순간의 사진이지만 첫 번째 사진은 카메라의 순간, 두 번째는 시공간의 순간이다. 카메라의 성능으로 끌어낸 첫 번째 순간은 경마장에선 누구나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이다. 우리가 소지한 스마트폰으로도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순간은 이 모든 상황이 이뤄진 순간 그것을 발견한 사람만 촬영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것을 기계적 찰나의 사진, 사진적 찰나의 사진이라 스스로 분류하곤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내가 즐기는 것은 바로 두 번째 사진이다. 기계적 찰나의 사진은 카메라라는 장치를 학습하고, 촬영 방법을 습득했다면 촬영할 수 있다. 반면 사진적 찰나의 사진은 기민한 시선을 요구한다. 더불어 특별한 시공간을 만날 수 있는 운도 필요하다. 


이렇게 양자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면 사진적 찰나의 사진에 대해 궁금함이 생길 수 있다. 사진적 찰나의 사진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담는 비일상이자, 찰나에 담겼지만 정적일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 표면에 붙은 대상의 몸짓보다 표면에 감춰진 누군가의 의도에 궁금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리고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사진이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사실 낯선 곳에서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짧은 여행을 할 경우엔 익숙해질 때까지 카메라 없이 많이 걷는다. 긴 여행을 할 때는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야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진으로 일상을 비일상으로 바꾸는 마법은 이러한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낯선 풍경에서는 무엇이든지 피사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시공간을 신경 쓰고, 순간을 잡으려는 노력이 사라진다. 

익숙한 서울에서, 익숙한 동네에서, 익숙한 풍경에서 낯섦을 발견했을 때. 사진은 내 것이 되고, 그 풍경 역시 나만의 것이 된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바꾸는 찰나는 익숙함에서 시작한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거리가 있다면 한 번쯤 카메라를 들고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많은 찰나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적인 찰나

찰나를 촬영한 사진이 언제나 역동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카메라적 찰나가 아닌 사진적 찰나이기 때문이다. 무척 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그 시간, 그 공간을 잡아낸 순간의 사진이다. 

찰나, 순간에 대한 개념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을 때는 촬영하고 싶을 때 여러 이유를 대며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지나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음에 찍지 뭐'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음은 없었다. 문득 다음이 없음을 깨닫고선 언제나 준비 중이다. 



질문을 만드는 찰나의 사진

사진은 가장 명료할 수 있는 시각 매체이지만 어떤 순간은, 어떤 사진은 가장 모호하게 다가온다. '왜 이 사진을 찍었을까', '왜 이 사진을 선택했을까'. 순간을 담은 사진은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끌어당긴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사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놓친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진은 어떤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었을까. 사진적 찰나는 흐름과 변화가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 지나치는 거리에서도 우린 매번 다른 사람들을 지나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사는 듯 보여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사진적 찰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묘함은 더 이상 마주칠 수 없는 시공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무언가 그 시간,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사진은 보여준다. 


가장 밀접한 공간에서, 가장 익숙한 시간에서 낯선 순간을 찾아내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의 몫이다. 먼 곳에 가지 않아도, 명소에 가지 않아도 나만 볼 수 있는, 나만 담을 수 있는 순간은 많다. 부산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는 대신 동네를 여러 바퀴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모델에 카메라를 돌리기 전에 매일 마주치는 가족의 모습을 파인더로 바라봐도 좋다. 사진적 찰나를 찾을 때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익숙함은 낯섦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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